변화관리가 AX 시대에 주는 답
조직행동론은 행정학과 경영학이 거의 완전히 겹치는 지점에 위치합니다. 조직, 인간, 행동, 의사결정이라는 공통의 대상을 다루기에 두 학문은 이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합니다. 행정학과 경영학을 나누는 경계선 위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조직 내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이라는 본질을 탐구하며 두 학문은 서로의 벽을 허물고 소통합니다.
이 지점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입니다. 행정학에서는 ‘의사결정 이론의 거장’으로, 경영학에서는 ‘조직행동 및 의사결정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결코 어느 한 학문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경계 위에서 본질을 꿰뚫었던 그의 행보는, 제가 행정학의 틀 안에서 경영학적 기법을 수용할 때 가져야 할 유연한 시각에 큰 영감을 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경영학이나 행정학 박사가 아닌 정치학 박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진정한 통찰은 경계 밖에서 온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인사행정 실무 현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특히 졸업 이후, 인사혁신처에서 근무하셨던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퇴직하신 한 과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SK에서 활용하던 역량기반 인사관리를 공공부문에 맞게 제도화해서 공직사회에 도입했다.”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알게 된 사실은, 역량기반 인사관리가 이미 2000년대 초반 SK와 포스코를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논의·적용되었고, 그 축적된 논의가 시간을 두고 공공부문으로 확장되어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전사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직무기반 인사관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무기반 인사관리는 본래 민간 기업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느냐’를 기준으로 채용과 보상을 설계해 온 방식입니다. 이 또한 민간에서 먼저 작동하던 제도와 논리가 공공부문으로 확장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문구나 절차만이 아니라, 해당 제도가 왜 필요했는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간에서 출발한 인사관리의 개념과 방법론이 어떻게 공공의 제도 언어로 번역되어 왔는지를 연결해 보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분명히 체감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인사행정에는 분명 행정학만의 고유한 이론과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제도 상당 부분은 민간에서 발전한 인사관리 기법을 공공의 맥락과 언어로 재구성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는 인사행정을 이해함에 있어 학문적 경계에만 머무르기보다, 제도가 형성되고 이동해 온 실제 경로를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올해 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민간 기업과의 접점을 넓혀 왔습니다. 기업 강의를 나설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러 가는 자리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소통하고 배우러 간다.’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제가 몸담고 있는 공공 영역에서 어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People Analytics 이야기를 하면 보통 성과를 재무적 지표로 연결하라는 요구를 많이 받습니다. 그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아주 깊게 파지는 않았습니다. 성과를 대리 측정하는 인식적 지표와 재무 성과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공 부문의 성과는 단순히 돈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의 성과에는 공공성, 신뢰, 수용성, 제도적 정당성 같은 가치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성과를 직접 측정하기보다는 성과에 대한 인식, 직무태도, 조직몰입, 변화 수용성과 같은 대리변수에 더 주목해 왔습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변화관리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변화관리 이론과 조직행동론의 핵심 내용은 경영학에서 활용되는 이론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 이론들을 공공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기 위해 공공봉사동기(Public Service Motivation)를 보다 강조했습니다. 변화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경영학에서 출발했기에 선행연구에서도 경영학 연구를 많이 참고했지만, 그 이론들을 공공조직에 그대로 이식하기보다는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논문 전반에 담고자 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이후의 활동 역시 이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영학 분야에서 발전해 온 People Analytics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기법을 공공의 맥락과 가치에 맞게 재해석하고 전환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방법론을 받아들이되, 공공조직이 지켜야 할 가치와 목적을 중심에 두는 것 그 균형을 찾는 과정이 지금 제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2021년 변화관리를 연구하던 시절 그리고 AI 활용에 집중하던 시기를 지나 저는 다시 변화관리라는 주제 앞에 서 있습니다. 최근 AX(AI 전환)는 AI 에이전트, RAG, 고도화된 LLM 등 새로운 기술적 트렌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결론은 분명합니다. AX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기술의 사양이나 도입 속도가 아니라, 조직문화의 변화, 즉 이를 설계하고 이끄는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에 있습니다.
변화관리가 없는 기술 도입은 늘 비슷한 결말로 이어집니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과 이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커지고, 시스템은 구축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장면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며 확인해 왔습니다. 결국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조직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일하는 방식으로 녹여내느냐가 성패를 좌우합니다.
AX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변화관리 프로젝트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는 순간,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조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한동안 제가 고민해 왔던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존 코터(John P. Kotter)가 제시한 변화관리의 핵심 요소는 리더십, 명확한 비전, 커뮤니케이션, 강력한 변화관리 조직,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에 대한 인식입니다. 공공조직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입장에서, “과연 공공에서도 이러한 조건들이 성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 내부 공모전 심사 혹은 자문을 다니며 공공 영역에서도 공공만의 방식으로 변화관리를 풀어낸 사례들을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조금은 뿌듯했고, 동시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공의 변화관리는 분명 어렵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그 언어와 속도, 그리고 풀어가는 방식이 민간과 다를 뿐입니다.
올해 저는 민간과 공공기관을 넘나들며 강의와 자문을 진행하며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브런치 스토리를 구독해 주시는 분들을 직접 뵙기도 했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기업 강의 현장에서는 제 브런치를 읽고 계신다는 팀장님을 만나기도 했고, 한 공공기관 인사팀장님께서는 오랜 기간 제 글을 읽어왔다며 ChatGPT 관련 저서도 잘 보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순간은, 제 콘텐츠가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였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지치지 않게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앞으로 AX는 민간과 공공 모두가 반드시 겪어야 할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종이 문서로 처리하던 일을 시스템으로 전환했듯, 이제는 AI가 업무 방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제 경험과 고민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저는 계속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다양한 공공기관 현장과 소통할 기회를 얻었고, 효과적으로 AX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의 사례에도 참여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공공 분야 AX가 나아가는 과정에서 공공의 가치를 지키면서 그 성공적 과정을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 이 경계 위에 서서 계속 글을 쓰고, 현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