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수능 점수
2000년 11월 15일.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그날은 수능 시험일이었다. 시험장은 꽤 경사진 언덕 위에 있는 학교였다. 평소처럼 편안한 복장인 교복을 입었고, 교복 치마 속에는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이 말이 지금 갑자기 떠오르는 걸 보니 그때 속으로 중얼거린 다짐이었나 보다.
부모님이 차로 바래다주신 기억이 나는데, 어디서부터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교문 앞에서 확인한 손목시계와 시험장 안으로 들어갈 때의 떨림, 그 기분만 기억난다. 그때 부모님의 뭉클한 표정,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교문 양옆으로는 후배들이 수험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른 아침 시간에 큰 함성이 들려도 응원하는 그 마음이 예뻐서 주민들이 용인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날의 2001학년도 수능시험은 수많은 만점자를 배출해 낸, 소위 ‘물수능’이었다. 어쩐지 수능 한파가 무색할 만큼 날씨가 포근하더라니. 가채점 결과 지금까지 그 어떤 모의고사보다 고득점을 한 나는, 그 어떤 대학도 원하는 대로 갈 수 있겠지 하며 구름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시험 칠 때는 평소 모의고사보다 난도가 낮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저 내가 찍은 게 잘 들어맞았다고 좋아했다. 그 설렘은 다음날 반 친구들 모두 크게 점수가 올랐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시험장에 들어갈 때는 수고한 나 자신이 대견했는데, 점수가 나오고 나니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뭐가 그리 나 혼자 억울하고 서글펐는지. 몇 문제만 더 맞았으면 하는 아쉬움에 사로잡혀 대학생이 되기 전 몇 달간 나는 괜찮지 않았다. 입시 준비하는 딸을 지켜보며 마음 졸였을 부모님께 그간 고마웠다고,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결과를 얻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순간을 놓쳤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수능 점수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멀리 보면 그건 아주 일부이며 이미 지나간 일에 매몰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알기엔 너무 어렸다.
지금은 대입전형이 크게 바뀌어서 수능시험 점수에만 연연할 수 없다. 다양한 수시전형이 있어 수능일 전에 대학합격까지 결정짓는 학생들이 많다. 과거 수능점수에 울었던 나는, 이제는 아이를 위해 입시설명회를 기웃거리는 학부모가 되었다. 변화하는 내신체계도 알아야 하고 대입을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혼란스럽다. 이런 내가, 각종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