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성을 위하여

낙엽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by 영샘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신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낙엽이 직장 내 도로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누군가가 치우고 있었다. 은행잎도 단풍잎도 아닌 누런색 이파리들은 바짝 말라 있어서 바람에 이리저리 가볍게 날렸다. 저런 낙엽 치우는 것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오래전 직장에서 본 첫가을 낙엽이 떠올랐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동네에는 큰 나무가 많아서 떨어지는 낙엽도 많았다. 그즈음 내부 게시판에 공지글이 올라왔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했다.

‘깊어져 가는 가을을 누릴 수 있도록 오늘부터 일주일간 낙엽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보행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낙엽은 11월 마지막 주에 치울 예정입니다.’


감성 가득한 내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정부 기관에서 가능한 걸까 의아했는데 정말 낙엽 청소가 중단되었다. 직장 내부 보행 통로에는 낙엽이 켜켜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부서 선배에게 여쭤보니 해마다 하던 관행이라고, 치울 때가 되면 싹 치워진다고 하셨다.


공지의 내용에 충실하게,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낙엽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렇게 낙엽 위를 걸었던 적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낙엽이 낭만적인 모습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에는 금세 지저분해졌다. 그럼에도 약속한 기간이 지나고서야 낙엽은 치워졌다. 낙엽이 사라진 자리는 말끔하면서도 허전했다.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낙엽의 색이 하얀 보행길에 물들어 있었다. 단풍잎은 붉은색, 은행잎은 노란색의 흔적을 남겼다. 물론, 비 온 후에는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그 시절 그런 행사를 기획했던 분은 누구였을까.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 하나 만들어주신 그분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가을 추억을 위해서 두었던 묵힌 낙엽을 한 번에 치우느라 고생하셨을 분들께도 뒤늦은 감사를 드린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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