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삶은 ‘달걀’이라는 유머가 내게는 너무 강렬해서 또는 내 취향이어서, 글쓰기 이전에 진지하게 삶을 정의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때로는 세상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아이들이 심도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 주니까.
“삶은 유치원을 졸업해야 진짜로 알 수 있는 거예요.”
“삶은 힘들어도 꾹 참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요.”
각자가 생각한 답을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삶은 달걀”이라고 말해주었다. 의외로 아이들은 웃어주지 않았다. 알파 세대에게 통할 유머는 아니었나 보다.
“달걀은 너무 단순한데요. 비빔국수 정도는 되어야 준비할 재료도 많고 먹을 때 배도 부를 것 같아요. ‘삶은 비빔국수’ 어때요?”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니 삶은 ‘비빔국수’처럼 다채롭다. 그 재료를 손수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필수로 들어가는 국수의 종류는 소면도 칼국수면도 괜찮다. 콩나물, 당근, 애호박, 무채 등등 채소는 모두 들어가도 좋고 싫은 게 있으면 빼버려도 그만이다. 비빔국수에 들어가는 삶은 달걀도 완숙, 반숙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소스의 맵기와 양도 조절 가능하다. 오늘은 이런 스타일로, 내일은 저런 스타일로 변화를 준다고 해도 그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 삶은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기에 세상은 뻔하지 않으며 늘 새롭다.
잘 차려진 비빔국수는 그 재료의 색감과 조화가 예뻐서 흩트리기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흐트러지는 게 싫다고 쳐다만 보면 그 맛을 알 수 없다. 결국 열심히 비벼줘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안 비비고 먹으면 ‘비빔국수’가 아니니까. 이와 같이, 삶도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떨어져서 구경만 해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다.
이런 삶이 나에게 주어졌음은 생각할수록 오묘한 일이다. 라디오를 통해 들리는 음악소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