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에게 줘야 할 마음

by 영샘

아이가 학교에서 자그마한 화분을 가져왔다. 겨우 서 있는 종이봉투에 흙이 담겨있고 동그란 황토색 구체가 그 가운데에 박혀있었다. 구체는 황토와 씨앗이 섞인 ‘시드볼’이라는 것이고, 그 안에 바질 씨앗이 있다고 아이가 알려줬다. 그때가 11월 초였으니, 겨울인데 씨앗에 싹이 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별말 없이 아이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안타깝게도 나는 식물을 성공적으로 키워본 적이 없다. 씨앗을 심어서 싹을 틔우는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고 손수 심은 식물이 쑥쑥 크는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화분을 집 안에 거의 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죽어간 식물에 대한 미안함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식물 키우기의 달인이시다. 엄마는 어떤 집에 살든 베란다를 화분으로 가득 채우셨다. 얻어온 씨앗도 심으면 싹을 틔웠고 죽어가는 화분도 엄마 손을 거치면 살아났다. 내가 키우지 못한 허브 화분을 엄마가 10배로 크게 자라도록 키워내셔서 베란다 가득 로즈마리향이 가득했던 적도 있었다. 그 비결을 여쭤보니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분은 많이 쳐다보고 살펴보는 만큼 크는데 네가 지금 그럴 여유가 없지.”


마음 가는 곳에 재물과 시간이 따라간다고 한다. 초록 생명체에게는 내 마음이 가지 않으니, 돈도 시간도 쓰지 않는 것이겠지. 성과가 더 잘 보이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봐서는, 은퇴 후 텃밭에 씨앗을 뿌리며 수확을 즐기는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는 나는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나 보다.


화분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아이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엄마, 화분에 싹이 났어요. 밖이 추워서 거실에 뒀더니 싹이 보여요.”

시드볼 한쪽, 따닥따닥 붙어서 흙을 뚫고 나타난 바질 싹이 앙증맞았다. 추운 날씨에도 이게 되는구나, 신기하고 기특했다. 종이 화분은 아이의 관심을 먹고 적절한 돌봄을 받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런 면에서는 내 아이가 자신의 외할머니를 닮았나 보다.


봄의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 집 바질은 쑥쑥 자랐다. 앙증맞았던 이파리는 좀 작은 깻잎 수준으로 큼직하다. 저걸 어떻게 먹을지, 아이는 매일 행복한 고민 중이다.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