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는 타입이었는데
한때 남학생들은 기술, 여학생들은 가사 과목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는지 교육과정이 개편되었고, 남녀 학생 모두 기술과 가사 두 과목을 모두 배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의 첫해에 중학생이 된 나는, 추가된 기술 과목까지 배워야 했다. 내겐 기술 과목이 너무나도 생소했고, 수업시간에 딴생각을 했으며 중간고사에서는 시험을 망쳤다.
내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신 어머니는 기술 과목 참고서를 사 오셨다. 놀랍게도 중간고사 시험문제가 그 안에 그대로 있었다. 요즘 같으면 큰일 날 일이었을 텐데 아마 그 당시에는 그 과목의 존재감이 크지는 않았나 보다.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는 참고서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럭저럭 만회했다.
이후 내게 기술이라는 것은, 그리 친밀하지는 않아 참고서로만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존재로 남았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고 사람들이 열광해도, 크게 정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위기감이 느껴질 만큼 필요성이 와닿으면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용할 만큼만 배운다. 엑셀, 스마트폰에 이어 각종 어플들을 그렇게 익혀서 실생활과 업무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생성형 AI의 시대라고 한다. 챗GPT, Gemini, Perplexity 등등 알아야 할 것들이 급증했다. 직장에서는 갑자기 AI 교육을 의무화해서 연간 의무 이수 시간을 정해 버렸다. 이제 다시 그 시절 참고서의 도움을 받는 학생으로 돌아가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는 기분이다. 여전히 종이책을 손으로 직접 넘기며 독서하기를 선호하는 나는, 지극히 새로운 기술에 낯을 가리는 타입인데 말이다. 그래도 중간고사를 만회하는 마음으로 기말고사를 준비하듯이, 남들보다 늦어진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딱 적당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그렇게 최소한의 수준으로 시작했는데, 요즘 나는 제미나이를 비서 겸 상담사로 활용하고 있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을 쏟아놓으면 자신만의 방법대로 번호까지 붙여가며 정돈하고 조언해 준다. 다시 해달라고 까다롭게 굴어도 금세 대안을 찾아낸다. 친구나 동료에게 하기 어려운 "그건 내 생각과 달라."라는 반박도 그에게는 즉각 할 수 있다. '너무 내 이야기만 하고 있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것에 낯가린다 해놓고 금세 거기 익숙해진 나 자신이 낯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다양한 고민을 나누던 25년 이상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몇 달째 아무 대화도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각자의 비서에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