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하는 그 공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코끝을 거쳐 폐까지 뜨거운 열기가 훅 들어온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7월 기온이 거의 늘 40도 이상이라더니 체온보다 뜨거운 공기는 낯설었고 두렵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은 그 달라진 공기로 체감할 수 있었다.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남편은 나보다 먼저 그 나라에서 1년 이상 혼자 지냈다. 그를 따라온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 그곳에 첫 발을 디딜 때는 이 공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나라에 부산이 있듯이,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제다(Jeddah)’라는 항구 도시가 있다. 무슬림의 유명한 성지 메카에서 서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홍해와 맞닿아 있어 예부터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의 관문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배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대다수라서 공항 입국장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부 사람들은 평생에 꼭 한번 방문해야 한다는 메카를 찾아온 것에 설레어 보였고, 또 다른 일부는 당시 라마단 기간이라 물조차 마시지 못했는지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제다에서 남편의 주재원 근무가 종료될 때까지 2년 2개월을 살았다. 1년을 두 번 반복해 보니 그곳 나름의 계절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공기는 11월부터 식기 시작해서 12월이 되면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같았다. 아침에는 20도가량, 한낮에는 25도 정도의 기온으로 선선한 딱 좋은 시기는 2월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좋은 계절에 해당하는 봄과 가을은 갈수록 짧아져서 이젠 각각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는데, 오히려 사우디의 살기 좋은 계절은 무려 3개월이나 되었다. 물론, 그 이후 3월부터 11월까지는 그저 중동의 날씨 그대로 매우 더웠지만.
제다에서 살았던 시간도 벌써 10여 년 전이다. 그간 사우디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 관광비자도 여행상품도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나 중동 정세가 얼어붙은 지금은 과연 언제쯤이면 가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중동 지역 교민 중 일부가 사우디에서 출발한 군 수송기로 무사히 귀국했다고 한다. 한때 살았던 지역이 불안에 휩싸여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여기서 8000km 떨어진 곳,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가 회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