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18
체코에서 이제 발을 떼고 오스트리아로 가야 합니다. 지구는 돌고, 시간은 가고, 계획한 일정은 소화해야 합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유레일 패스가 있는 여행자들은 크룸로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빈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패스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역무원을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유레일 패스를 구매하기 때문에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오스트리아로 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체스키 크룸로프의 구시가지 안에서부터 택시로 10분 정도 타고 가거나 20분가량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버스 정류장을 통해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을 구시가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접근하기 편합니다. 러시아부터 폴란드까지 발트해에 걸친 북유럽에서는 에코라인 버스를 이용했다면, 독일 주변 국가, 즉 체코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나라들은 플릭스 버스를 이용합니다. 초록색 이층 버스이기 때문에 언덕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더라도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층 버스인 데다 자리마다 모니터가 달려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장거리 버스이기 때문에 안에 화장실도 달려 있습니다. 어디서 예약해야 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휴대폰에 Flix bus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5분 만에 표를 구입하고 휴대폰의 QR코드로 탑승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오늘 선택한 교통수단은 버스가 아닙니다. 바로 Bean Shuttle이라는 것입니다. Bean Shuttle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국어로도 친히 번역되어 있어 영어 문장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처럼 대형 수송차량이 아닌 택시같이 운행되는 차량입니다. 버스와 달리 정해진 목적지에서 내리기보다는 유명한 호텔이나 기차역, 심지어 공항까지 원하는 곳에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버스보다 좌석도 편합니다. 버스보다 10유로 정도 더 비싸지만 여행 중 가끔 부릴 수 있는 사치라 생각하면 한번쯤 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주변의 많은 대도시로 통하기 때문에 체스키 크룸로프로 들어오거나 나갈 때 편합니다.
체코에서 마지막까지 환대해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이제 셔틀 기사님을 만났습니다. 능숙하게 무거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으시고는 옆에 있던 한 동양인 노신사 분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콧수염이 멋지게 자라 마치 앤트맨의 '루이스' 역할로 유명한 마이클 페냐를 닮은 기사님은 뒷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차가운 생수를 나눠줍니다. 그리고는 안전하게 잘 모실 테니 편안하게 있으라며 미소를 띱니다.
뒷자리에 함께 앉은 노신사와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동아시아 삼국의 사람들은 워낙 교류가 많아서 그런지 얼굴이나 옷 스타일만 봐도 서로 어느 나라 출신인지 대략 티가 납니다. 노신사분은 역시나 일본 분이셨고 그분도 저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봅니다. 고향이 오사카인 이분은 은퇴 후 유럽 여행을 하며 지금 비엔나에서 일하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생생했기 때문에 오사카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틔우고는 서서히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신기하게도 여행자들의 경계 때문인지 의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껄끄러울 수 있는 부분의 이야기는 함께 칼로 도려낸 듯 피해 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국경 너머 오스트리아의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휴게소를 지나 한두 시간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제가 예약한 숙소 앞입니다. 셔틀을 탄 덕분에 원하는 곳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노신사도 비슷한 곳에서 내려야 해서 함께 차에서 내렸습니다. 운전기사가 트렁크에서 우리 짐을 내려주고 이제 떠나려 하는데 그를 불러 세웁니다. 그러고는 남아있던 체코 동전을 모두 꺼내 줍니다. 앞으로 자신은 이 돈을 쓸 일이 없을 거라며 팁으로 꺼내 줍니다. 저도 함께 가지고 있던 모든 동전을 꺼내 주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큰 포옹과 함께 고맙다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 비엔나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