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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ul 02. 2019

낯선 도시의 두려움

오스트리아 여행기 -1


  새로운 도시의 낯선 냄새는 설렘보다 두려움을 먼저 끌고 옵니다. 아직 진정한 여행가로 거듭나기엔 멀었나 봅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서도 긴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덩치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제 몸집만 한 캐리어를 들고 줄을 서는데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도 있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체코에서 여행가로 성장한 줄 알았는데 또다시 많은 사람 안에서는 도루묵이 되어버렸습니다. 4인 도미토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콘도처럼 생겨 생각보다 너무 좋아 되려 이 방을 쓰는 것이 맞는지 되려 궁금합니다. 이 넓고 깨끗한 방을 설마 혼자 쓰나 싶습니다.

 온갖 걱정을 머리에 끙끙 싸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체코에서 있던 일이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꿈만 같습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 불안한 마음이 뒤숭숭하게 올라옵니다. 걱정이 쌓이고 쌓여 이 아름다운 도시가 차갑게만 다가옵니다. 뜨거운 오스트리아의 햇빛조차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도시를 온다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사실 모든 도시를 입성하면서 설렌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컸던 도시들이 많습니다. 하루 이틀 머무르다 보면 도시에 적응되며 골목골목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 처음 도착해 발을 디디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발가락 끝에서 부터 슬며시 올라오고 온 몸을 긴장시킵니다. 한여름에 혼자서 혹한의 추위를 느낍니다. 괜스레 모든 사람들이 무뚝뚝해 보이고 낯설어 보입니다. 여행가라고 하면 이런 긴장감 없이 원하는 여행을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과연 저는 여행가라고 스스로 부를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도시는 언제나 저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길을 묻는 낯선 동양인을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던 할머니와 청년, 낯선 폴란드에 도착했을 때 아침 식사를 하니 즐거운 여행이 되라며 인사를 건네주던 푸드트럭 아저씨, 그리고 아름다웠던 추억의 체스키 크룸로프. 괜스레 긴장하고 마음을 닫아 둔 것은 기우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우선 걸었습니다. 숙소가 빈 시내와 꽤 떨어져 있어서 오늘은 가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걷다 보니 어딘지 모르는 동네가 나왔습니다. 괜히 긴장되어 목이 탔습니다. 자판기가 눈에 보이길래 다가갔습니다. 분명 불은 켜져 있는데 제 지폐를 받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카드를 긁어보지만 눈을 감은 자판기는 묵묵 답답입니다. 오기가 생겨 10분가량 실랑이를 했지만 영롱한 불빛을 내뿜는 자판기는 저에게만 매정합니다.


 왜 이 도시는 저에게 꽉 닫혀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지나가던 백발의 노부부가 말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독일어로 말을 걸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말을 걸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지나가던 학생을 붙잡아 저에게 도움을 주라는 듯 말을 겁니다. 학생까지 포함한 기이한 4명의 조합이 자판기와 씨름해 보았지만 자판기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처음 낯선 이에게 도움을 받았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처럼 이번에도 우연찮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든 도시가 저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저 혼자 등을 돌린 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따듯한 온정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도 저를 향해 열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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