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여행기 -2
도시를 돌아다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첫 끼니는 오랜만에 한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따듯한 국물에 밥을 먹은 것이 벌써 일주일 전입니다. 체코에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기는 했었지만 이제는 온몸이 한식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글자글 끓는 뚝배기 안의 고소하고 짭짤한 강된장을 먹고 싶기도 하고, 들깨가루가 잔뜩 뿌려진 찐득한 순댓국도 먹고 싶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하자면 하루가 다 가도 부족합니다. 곧바로 휴대폰을 켜서 빈에 있는 한식당을 찾아보았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한식당이 불과 9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오늘 문을 닫았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지도는 걱정하지 말라며 저를 부추깁니다.
한식당을 향하는 지하철로 가는 길에 온갖 음식들이 저를 유혹하지만 끄떡없습니다. 마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한눈팔지 않고 한식당을 향해 꾸준히 갔습니다. 빈 시내로 들어서니 처음 도시에 왔을 때의 걱정과 두려움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한식을 향한 제 욕구가 모든 두려움을 없애버린 듯합니다. 처음 데이트하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설렘으로 미소를 감출 수 없습니다. 가는 사이 해도 저물어 살짝 찬 바람이 볼을 스칩니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에는 살얼음이 살짝 낀 시원한 맥주가 최고인 듯이, 이런 찬바람 부는 날에는 따듯한 찌개가 제격입니다.
영어로 요리라는 이름의 이 한식점은 빈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점인 듯합니다. Korean Dining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더욱 반갑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절한 한국인 종업원이 다가옵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안내를 받고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받았습니다. 여기가 강남 한복판의 한식당인지 유럽 한가운데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하며 들어간 다른 식당들과 다르게 앉아있으면 익숙한 구수한 냄새가 퍼집니다.
이윽고 정갈하고 깔끔한 된장찌개가 나왔습니다. 새콤해서 입맛을 돋우기 최고인 파래무침, 짭짤하고 마늘향이 어우러지는 싱싱한 시금치로 먼저 한식을 갈구하는 위를 달래줍니다. 구수한 된장 향이 코를 찌르지만 최고의 맛을 위해 아직 참습니다. 아삭한 콩나물은 한국에서 먹던 그 맛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집에서는 콩나물을 잘 먹지 않았지만 참기름을 온몸에 두른 채 유혹하는 콩나물을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만에 만나는 김치로 매운맛과 거리가 멀던 제 몸을 다시 한국식으로 바꿔둡니다. 폴란드에서 먹었던 김치는 아무래도 폴란드인이 만들어서 신 맛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상태로 거듭난 이 배추김치는 오감으로 온몸을 만족시켰습니다. 먹기 좋은 색으로 시작해 입으로 향한 김치는 여행에서 먹은 그 어떤 야채보다 싱긋하게 입 안에서 씹힙니다. 동시에 귀를 만족시키는 아삭한 소리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혀에서부터 시작된 새콤하고 매콤함은 곧 코를 통해 익숙한 김치의 향이 올라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메인 메뉴인 된장을 맛 볼 차례입니다. 두부조차 한국식 두부인 뜨듯한 된장찌개입니다. 우선 수저를 들고 두부를 반 자릅니다. 그리고 국물과 함께 입으로 직행합니다. 밑에 나도 모르게 깔린 양파의 단맛과 파의 향기가 더해진 두부와 국물의 조화는 5성급 호텔 레스토랑 부럽지 않습니다. 시원한 맛이 일품입니다. 그동안 빵과 수프로만 먹어온 몸에 기력이 보충됩니다. 어렸을 때는 왜 보양식을 먹는지 몰랐지만 오늘부터 알 것 같습니다. 마치 콘푸로스트 광고처럼 기운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따듯한 쌀밥을 한 술 퍼서 된장과 함께 먹다 보니 속도가 붙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밥을 다 먹고 아쉬워서 밥 한 공기를 더 주문했습니다. 이번에는 거의 걸신들린 듯이 밥을 해치웁니다. 할머니가 해준 된장찌개도 좋고 맛있는 고깃집에서의 된장찌개도 좋지만 오늘만큼은 이 된장찌개가 제 생에 최고의 찌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