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여행기 -3
빈에서의 이튿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숙소는 하루만 예약해 두었습니다. 오랜만에 1인실을 쓰고 싶은 욕심에 빈에서의 둘째 날은 다른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주섬거리며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맑고 높은 빈의 하늘은 마치 천고마비 계절의 우리 하늘을 보는 듯합니다. 밖으로 나와 따듯한 햇살을 받으니 첫날 생겼던 새로운 도시에 대한 걱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캐리어를 끌며 우선 비엔나 시내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일정이 많으니 24시간용 지하철 티켓을 끊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선 호프부르크 왕궁 앞의 케른트너 거리로 출발했습니다. 슈테판 성당도 있고 레스토랑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 구경할 거리가 넘치는 곳입니다.
오전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도시처럼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습니다. 거리 초입부터 웅장한 건물이 있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새롭고 놀랍습니다. 사실 빈에서는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유럽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지만 왠지 모를 기대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에 대해 아는 것은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 잘츠부르크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이 도시들은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 루트에 집어넣기에는 거리가 있어 여행 루트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기대가 없었는데, 러시아 여행 중 남은 일정을 준비하다 보니 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른 여행지는 최소한의 공부를 하며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었으나 그대로 오스트리아를 가면 시간 때우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낮에는 경치를 보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통해 속성 오스트리아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공부한 덕분에 이렇게 여유롭고 기대감에 넘치며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직접 보고 들으며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지만, 그 성장에 물을 주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입니다. 카프카에 대한 공부가 없었으면 그 미로 같고 현대 미술 같은 박물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푸시킨에 대해 모르고 박물관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모스크바에서 고흐와 고갱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직접 보고 듣는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그 존재에 대한 공부가 우선되어야 더 오래 가슴속에 남습니다.
거리를 배회하며 이 도시의 운치를 즐기다 보니 호프부르크 왕궁입니다. 도심을 한 바퀴 도는 마차와 수많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메카를 방문한 수많은 이슬람 신도들처럼 왕궁 앞에도 아름다운 궁전을 보기 위한 수많은 관광객이 알라를 기다리듯 왕궁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관광의 목표는 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멋진 계획을 위해 오늘은 이 궁전을 밖에서만 바라봅니다. 말똥 냄새가 코를 콕 콕 바느질하듯 찌릅니다. 뇌에 박힌 화려한 궁전의 모습에 말똥 냄새가 배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먼저 발걸음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