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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휴양지에서 혼자 노는 법

그리스 여행기 -3

by 박희성

호텔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슬며시 들어옵니다. 이렇게 좋은 채광을 받은 기상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역시 비싼 호텔은 다른 듯합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킨토스에서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해가 들어와 잠에서 깼지만 따듯한 이 기분이 좋아 커튼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 창문에 새어 나오는 빛을 막고 다시 침대에서 뭉그적거립니다. 휴양지에 왔으니 제대로 쉬어 주겠다는 마음입니다.


잠은 달아났지만 오랜만에 늦게 일어난 만큼 휴대폰과 노트북을 번갈아가며 침대를 벗어나지 않다가 배가 고파져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닷가 앞의 숙소라 그런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따듯한 바다 냄새가 그윽합니다.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간간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올리브가 익는 기분의 햇빛을 피하기 위해 아껴둔 선글라스도 써 봅니다. 정말 휴양지에 왔다는 티를 내는 기분입니다. 철석 거리는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려 다가가니 작은 해변이 나옵니다.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 하늘과 깨끗한 수평선을 닮아 바다는 맑고 푸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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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배회하다가 감미로운 올리브 냄새에 유혹당해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테라스에 앉아 그리스식 피자를 하나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체더치즈와 올리브가 듬뿍 올라간 그리스식 피자가 나왔습니다. 미국식 피자보다는 이탈리아식 피자와 비슷한 그리스식 피자에는 색색의 야채들이 올라가 보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치즈와 올리브의 짭짤한 맛과 고소한 맛이 함께 느껴지고, 화덕에서 구운 바삭한 도우에는 깊은 맛이 느껴집니다. 친절한 주인은 부족한 것이 없는지 간간이 다가와 물어봅니다. 엄지를 들어 웃어 보이고 다시 피자에 집중합니다. 그리스의 명물인 보라색 양파와 올리브의 맛에 중독되어 순식간에 접시를 비웁니다. 향긋한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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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이 넓게 이어진 해변은 아니지만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해변에는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럽에서 소문난 휴양지인 탓에 젊은 커플부터 노부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섬을 즐기고 있습니다. 길거리에도 손잡고 걷는 커플들이 가득하지만 애써 무시하며 나 혼자도 잘 놀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합니다. 해수욕장을 지나 전망이 좋아 보이는 언덕으로 걸어갔습니다. 햇빛이 친구가 되어주어 따듯해 생각보다 걸어갈만합니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걸어간 지 10분이 넘으니 땀이 나며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도로에 차는 많이 없지만 작은 스쿠터와 사륜 오토바이를 대여해서 타고 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사실 자킨토스의 서울 면적의 2/3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넓어 걸어서는 이 섬의 모든 곳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이용합니다. 자전거는 타 봤지만 오토바이는 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뜻 남들처럼 오토바이를 대여하기 힘듭니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 같이 타보자고 제안하면 선뜻 탈 용기는 있지만 혼자 시작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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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 만이 오토바이를 탈 수 있으니 용기 없는 저는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니 자킨토스의 둥근 해변이 빛이 납니다. 더 걸어가 높은 산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고 싶지만, 태양이 뜨거워 더 이상 올라갈 힘이 없습니다. 산 쪽에 구름이 두껍게 걸쳐 있습니다. 혹시 내일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작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일은 드디어 기다리던 <태양의 후예>의 해변으로 유명한 나바지오 해변 투어를 하려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처럼 빛나는 태양만 하늘에 있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 낮은 언덕 위로 올라가니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두 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높은 구름과 푸른 바다는 가슴을 울렁이고 푸른 그리스 깃발은 마치 바다처럼 영롱하게 휘날리고 있습니다. 저 멀리 하얀 조각구름은 수평선을 향해 조각배처럼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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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에서 선선한 바닷바람으로 땀을 좀 식히고 언덕에서 내려왔습니다. 휴양지라 그런지 마음도 여유로워집니다.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니 편한 마음으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걷다가 힘이 들면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면 됩니다. 넓은 바다와 푸른 잔디밭, 수평선이 함께 보이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그리스식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책을 읽습니다.


그리스에 왔으면 그리스식 커피도 한번 맛봐야 합니다. 터키 커피에서 파생된 그리스식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만 추출하는 이탈리아식 커피와 또 다른 맛입니다.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보다 더 곱게 간 커피 원두를 설탕과 함께 찬물에 넣고 끓이면 그리스식 커피 완성입니다. 물과 원두를 함께 끓이기 때문에 마시고 나면 커피에 원두 가루가 남는데 때로는 이 커피 가루로 점을 보기도 합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만나는 달콤한 커피는 휴양지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게 해 줍니다. 이런 멋진 풍경 속에서 만나는 그리스식 커피는 평소 마시는 커피와 색다른 기분입니다.


혼자 여행을 왔으면 외로움도 있지만 혼자서 느껴보는 여유로움도 있는 법입니다. 누군가와 왔으면 그만한 재미가 있었을 것이고, 오늘 같이 혼자 여행을 왔다면 혼자만의 재미를 찾으면 그만입니다. 달콤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고 나니 서서히 해가 저물어 들고 있습니다. 내일의 투어를 위해 오늘은 일찍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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