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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의 섬, 자킨토스

그리스 여행기 -2

by 박희성

드디어 자킨토스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서울시의 2/3 크기의 꽤 넓은 크기의 섬이라서 호텔을 정하는 것이 전날까지 고민이었습니다. 택시를 제외하고는 이동 수단이 드문 섬이라 선착장에 가까운 호텔을 골라야 하는가, 해변이 아름답게 보이는 호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마다 호텔을 정하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자신이 호텔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격, 청결, 서비스, 안락함, 뷰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는데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위치였습니다.



처음 도시에 도착하면 그 도시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언제나 하루만 머무르면 그 두려움이 사라지지만 처음 내려서 익숙하지 않은 그 기분이 저를 위축시켰습니다. 때문에 버스 터미널이나 지하철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예약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자킨토스에서 선택한 숙소 역시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자킨토스 섬 자체가 유럽에서 유명한 휴양지이기 때문에 호텔들의 서비스나 가격의 편차는 크지 않아서 호텔을 고르는 것은 거리를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마치 강원도에 있을 법한 펜션처럼 생긴 호텔이었는데 그래도 작은 풀장까지 있을 것은 다 있었습니다. 휴양지에 이제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르니 오랜만에 숙소에 넉넉하게 돈을 써서 크기도 큰 비싼 방을 빌렸습니다. 집에 있는 침대보다 큰 침대에 넓은 책상, 그리고 일출을 볼 수 있는 테라스까지. 호캉스라는 말은 말로만 들어봤지 이렇게 좋은 호텔에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바캉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면서 다양한 여행지를 가봤지만 휴양지는 처음 왔습니다. 마치 서울에서 살듯이 바쁘게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탐방하고 열심히 공부하듯이 여행했었는데, 이곳은 방문할 유적도 랜드마크도 없습니다. 갑자기 숨 가쁘게 달려온 여행에 숨통이 트인 기분입니다. 그냥 쉬면 됩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니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천장을 바라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여독을 잠시 풀어주다가 배가 고파졌습니다. 시간은 벌써 5시를 넘겼습니다.


호텔에서 나와 그냥 발 닿는 곳으로 걷다 보니 작은 시내가 나왔습니다. 시내라기보다는 읍내 같은 분위기의 동네에는 레스토랑과 투어를 파는 여행사, 그리고 술집이 가득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구경을 하다 보니 여행사들마다 태양의 후예가 나온 난파선 해변 광고를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내일부터 천천히 골라보기로 합니다.


걷다가 어느 레스토랑을 가야 하지 생각하는데 한 레스토랑 앞에 섰습니다. 게임 <슈퍼마리오>에 나올 듯한 콧수염을 가진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환영한다며 오라고 꼬십니다. 이런 호객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푸근한 인상과 환대가 마음에 들어 따라가 보았습니다. 레스토랑 밖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친근하게 메뉴를 설명해줍니다. 생선을 먹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정어리 구이를 하나 주문했습니다.



보라색 양파와 토마토가 아삭 거리는 그릭 샐러드와 바삭거리는 감자튀김은 한 잔의 맥주와 정말 찰떡궁합입니다. 맥주를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토마토처럼 붉어지는데 푸르고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저녁을 먹으니 맥주를 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차가운 맥주를 한 잔 들이켜고 이번에는 정어리를 하나 집어먹습니다. 숯불에 구워 아직 따듯한 정어리는 뼈째 씹어 먹어도 부드럽습니다. 마치 열빙어를 먹는 듯 머리부터 꼬리까지 씹어 먹었습니다. 푸른 바다의 향기가 입안에 퍼집니다. 제대로 된 밥은 오늘 처음 먹었기 때문에 이 모든 접시를 바닥까지 긁어먹었습니다. 역시 푸른 바다에서 자란 신선한 생선인 탓인지 질리지 않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레스토랑을 나와 밤바다를 보기 위해 해변으로 걸어갔습니다. 사람이 없는 해변은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소리나 인공적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지구가 멈추는 그날까지 이 파도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밤바다를 걸어 다니며 내가 휴양지에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지만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휴양지. 그래서 다들 휴양지로 향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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