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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은 내가 당하면 100%, 안 당하면 0%

그리스 여행기 -5

by 박희성

절로 미소가 나오는 자킨토스에서의 행복한 4일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마지막 도시 아테네로 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바지오 해변 투어를 마치고 난 이후, 육지로 나가는 페리가 포함된 버스를 오전 7시로 예약했습니다. 마음은 이곳에서 평생 살고 싶지만 비자와 비행기가 아테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택시 서비스까지 예약을 다 했는데, 아직 아테네의 숙소는 예약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이 발전된 세상이라 도착하기 전날에 숙소를 예약해도 돼서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아테네의 치안의 불안한 소식 때문입니다.


경제 위기로 디폴트 선언을 한 그리스는 실업자가 급증하고 물가가 치솟아 강도나 네오 나치의 무차별 폭행이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아테네 입성을 앞둔 사람으로선 이런 불길한 상상들이 두려울 뿐입니다. 특히 여행을 하던 기간에는 아직 ISIL이라는 테러 집단이 그리스를 자극하고 있던 때라 더욱 불안은 커졌습니다. 예약 사이트로 본 숙소들 중 저렴한 가격에 주요 관광지와 가까운 곳은 오모니아 광장 주변이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도 가깝고 숙소들의 질도 괜찮아 보여 예약하려고 그 중심으로 찾아 두었는데, 절도나 시위가 빈번한 지역이며 외교부에서도 지역 방문을 자제하라 합니다. 때문에 숙소 예약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치안은 내가 당하면 100%, 당하지 않으면 0%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서 불상사가 생긴 사람에게 그 도시에 대해 물어보면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카드를 도난당해 180만 원이 사라진 저에게도 러시아는 좋은 나라지만 치안만큼은 나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아무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치안이 알려진 만큼 나쁘지 않은 도시일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불상사로 여행을 불쾌하게 마무리할 바에 아무런 사고 없이 치안 좋은 국가로 기억에 남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밤새 숙소를 고르고 고르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의 작은 아파트를 예약했습니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싸고 자킨토스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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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아테네로 가면서도 치안의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첫 도시를 가면 막연한 불안함이 가슴 한편에 있지만, 아테네처럼 치안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확정적인 도시로 가면 더욱 떨립니다. 새로운 도시의 설렘보다 두려움을 안고 버스는 아테네로 도착했습니다. 혹시나 모르는 소매치기를 걱정하며 미어캣처럼 주변을 경계합니다. 너무 긴장하니 어깨가 뭉쳐 아파집니다. 정류장에서 직원들에게 숙소 가는 길을 물어봐도 그리스어로 돌아오니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 있는 꼬마들조차 의심스럽습니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검색해 찾아보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야 합니다. 심지어 외교부에 "가급적 우리 국민은 동 지역 방문을 자제 바라며, 불가피하게 방문하게 되는 경우 신변에 각별히 유의 요망" 하다는 오미니아 지역에서 환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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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해도 택시 타기에는 돈도 없으니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 합니다. 버스를 타고 캐리어와 가방을 손에 쥐가 날 정도로 꽉 붙잡고 오모니아로 갔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의심스럽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움찔합니다. 사실 이들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의심하는 것이 미안합니다. 하지만 도시에 낯선 이방인으로 도착한 사람에게는 이런 낯선 사회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지하철에서도 벽에 딱 붙어 아무도 오지 못하게 경계를 펼치고 간신히 숙소 근처의 역에 도착했습니다. 위험하다고 하는 지역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남아 숙소까지 걸어가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예약한 숙소의 사진에 나온 그 장소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습니다. 아파트 형식이라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실 4시에 오기로 했었지만 약속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도 읽지 않아서 그리스에 사는 펜팔 친구에게 전화를 부탁했습니다. 그늘에 앉아 하루 종일 쌓인 긴장을 조금 풀어봅니다.


위험하다고 스스로 옥죈 아테네지만 아직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려 새로운 곳에 가는 즐거운 사고가 아닌 강도나 도난같이 큰 위험이 되는 사건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긴장을 하지 않아 도착해 짐을 잃어버릴 바에는 조금 긴장해서 여행의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모니아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피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잠시 후 친구의 전화를 받은 주인이 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방문을 잠그니 긴장이 모두 풀려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한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고 시계를 보니 3시입니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여행이 얼마 남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돌아보기 위해 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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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숙소를 올 때 까지는 몰랐는데 짐을 두고 밖으로 나오니 자킨토스처럼 햇빛이 쏟아집니다. 부정적으로 상상하던 아테네와 다르게 평화롭게 산책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긴장하며 놓친 풍경들을 이제라도 봐야겠습니다. 해가 지면 아직 무서우니 해가 떠 있는 동안 발 빠르게 돌아다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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