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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Aug 10. 2020

힘 내라는 말 대신 힘 빼

골프공 치듯 힘 빼고 살아가기

 고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에 골프를 배웠다. 학교에서 싸구려 웨지(짧은 거리를 톡 밀어치는 골프채)를 몇 개 장만해 스윙보다는 퍼팅을 하는 수업이었다. 골프 수업이라 해서 TV에서만 보던 호쾌한 스윙을 기대하던 우리는 실망했다. 긴장도 없고 재미도 없는 수업이 지루해질 찰나 체육 선생님은 자신이 쓰던 아이언 클럽을 가져오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돌아가며 그물에 대고 스윙을 할 기회를 주셨다. 사람은 많고 클럽은 하나라 각자 딱  한 번의 스윙 기회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공을 쳐야 했다. 선생님은 제대로 된 스윙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스윙. 하지만 힘이 남아돌던 우리는 힘을 빼라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TV에서만 보던 장면을 위해 힘껏 공을 쳤다.


 평소에 TV를 통해 듣던 골프공 치는 소리는 총명한 종을 치는 듯이 명쾌한 소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공을 치는 순간 뚝 하며 썩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앞선 친구들의 실력을 비웃으며 자신의 차례에는 시원한 소리가 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거의 모든 친구들은 완벽한 타격에 실패했다. 골프를 알지 못하니 이건 골프채가 이상하다고 탓을 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은 우리를 비웃으며 직접 클럽을 잡으셨다. 그리고 단 한번에 공을 시원하게 타격해 호쾌한 소리를 직접 만드셨다.


 “힘을 빼고 쳐야 한다니까. 너희들은 어깨부터 발목까지 힘을 꽉 주고 치니까 자꾸 삑사리가 나는 거야.” 


 골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운동을 해도 힘을 빼라는 소리는 헬스장을 제외하고 어디서나 듣는다. 야구를 할 때도, 탁구를 할 때도, 심지어 낚시를 할 때도. 언제나 “힘을 빼고 툭 갖다 대라.” 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처음 운동을 접한 사람은 몸에 근육들이 긴장해 있기 때문에 움츠러들어 있고, 그 긴장으로 인해 온 몸에 힘이 들어간 탓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근육을 억지로 쓰게 되니 실수하게 되고, 힘을 빼는 순간부터 수월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나오는 법이다.



 가을이 다가올 무렵 홀로 제주도에 왔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운 좋게 휴가를 받게 되었다. 국내 여행을 혼자 온 것은 처음이었다. 휴가 기간이 거의 끝나간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스태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삼복은 이미 지나갔지만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바삭거렸고, 해수욕장 곳곳에도 사람들이 아직 남아 늦은 더위를 벌써 차가워진 바닷물로 식히고 있었다. 청자의 푸른 빛을 담은 듯한 바다는 너울거리는 큰 파도와 거울같이 잔잔한 파도를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혼자 물놀이를 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굳이 쉬는 날까지 휴대폰을 보긴 아까워 휴대폰은 무음으로 가방에 집어 넣었다. 그리곤 그동안 읽지 못해 마음의 부채가 있던 오래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구간에서 반복되던 글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내 곧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분명 쉬기 위해 떠나온 것임에도 다양한 걱정들이 머리 속에서 뒤엉켜 있었다.


 책임지어야 할 문제, 내 책임은 아니더라도 속에 있는 부채,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생긴 모든 걱정들이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쏟아졌다. 그 바람에 휴가를 왔음에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궁상맞게 카페에서 홀로 끙끙대고 있었다. 나와 다르게 해수욕을 즐기던 해변의 사람들의 얼굴에는 주름진 인상은 없었다. 오직 웃음소리와 서로를 향한 따듯한 눈빛만이 그들 사이를 메꾸고 있었다. 가지지 못한 저들의 행복을 부러워하며 괜한 열등감이 슬그머니 생겼다.


 굳이 모든 걱정을 혼자 떠안으며 살아갈 필요가 없었다. 긴장하지 않고 살아도 충분히 힘든 세상인데 나 하나 누울 자리 찾지 못한 듯 억지로 몸을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열정 아닌 아집 때문에 걱정이 늘어났고, 덕분에 온 몸과 정신이 긴장으로 빳빳해졌다. 유전적 탈모가 없다고 자랑하던 풍성한 모발은 점차 가늘어졌고, 노인정의 할머니들 마냥 굽은 등과 허리는 펴기도 힘들었고, 위액은 목구멍까지 역류하는 상황까지 놓여졌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나를 보고는 힘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힘 내라는 말보다 힘 빼고 살라는 말이 더 필요했다. 


 힘 빼고 살아야 한다. 온 몸의 근육들이 이미 잔뜩 긴장해 있다. 힘이 들어간 근육이 실수를 낳는 것처럼, 걱정이 가득한 힘 들어간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 실수를 낳는다. 골프공에 힘을 싣기 위해서 내 몸에 힘을 빼는 것처럼, 살아감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내 안의 걱정을 빼야 한다. 걱정이 많으면 고민이 많아진다. 고민이 많아지면 실수가 늘어난다. 헤어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굴레처럼 실수가 늘어난 삶은 또다시 내 몸에 힘을 넣게 된다. 몸에 힘을 빼라던 선생님의 오래된 말씀은 결국 돌고 돌아 사회의 일부가 된 나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결국 여행지에서 모든 걱정을 날려버리고 행복하게 놀다 돌아왔습니다. 라는 동화적 결론은 없었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동안 다시끔 떠오른 걱정들 탓에 휴대폰의 일정을 뒤적이며 다시 걱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차피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책임져야 할 문제는 책임을 지는 순간에는 힘들어도 결국 사라졌고, 내 속에 부채로 남은 문제 역시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해결되었고,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은 천천히 흐려졌다. 모두 당시에는 큰 고민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기나긴 삶 속에서 작은 파도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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