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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Dec 23. 2020

여행 중 모르는 사람의 사진 찍자는 말이 인종차별일까

인도에서 수 없이 들은 "같이 사진 찍자"라는 말이 인종차별일까

 타지마할의 엄청난 위엄을 눈 앞에 두고 조금씩 걸어가다 보면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라는 또 하나의 눈을 들고 타지마할을 찍고, 타지마할 앞의 일행을 찍고, 셀카를 찍고 있다. 세계적인 랜드마크 앞에서는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우리도 남들처럼 똑같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걸어갔다. 누군가는 이 멋진 풍경을 눈으로 담아야지 카메라에 담으면 감동이 덜하다고 했지만, 어쩌겠는가. 반사적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이미 누르고 있고, 멈출 수 없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데.


 함께 간 친구와 사진도 찍고 서로 찍어주며 타지마할의 모든 분위기를 즐기는데, 갑자기 한 인도인이 사진을 부탁했다. 자기 일행들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고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지만 아니었다. 자신과 ‘우리’가 사진을 찍자는 뜻이었다. 내가 가수였다면 마치 영화 <서칭 포 슈가맨>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인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배우였다면 내 작품이 인도에서 나도 모르는 인기를 끌고 있었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배우도 가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왜 나한테?


 사실 인도를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경험했을 사진 요청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인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20대 남성에게 젊은 남녀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하니 인기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바라나시에는 이미 수많은 한국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봐도 무덤덤해져서 사진을 찍자는 제안이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타지마할은 인도 전역에서도 구경을 오는 랜드마크인 만큼 한국인, 혹은 동아시아인을 보지 못했던 타 지역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신기해 사진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름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니 인도는 서구권 백인들이 동아시아인보다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인도인 입장에서는 백인은 200년 동안 같이 살아온 이웃(이라기보다는 지배자에 가까웠지만)인 반면 우리는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이웃이었다. 또한 객관적인 자료는 없지만 주관적으로 스치며 만난 사람도 동아시아인들 보다 백인들이 훨씬 많았다. 70년대 아니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인이 익숙하지 않던 우리나라에 백인이 나타난 풍경이랑 닮았다. 우리도 동네에 백인이 나타나면 다들 흘끗 쳐다봤고 혹은 신기한 마음에 말 한마디 건네곤 했다. 만약 카메라가 보편적이거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가 있었으면 우리도 백인을 보며 신기한 마음에 한 번씩 사진을 요청하곤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이유로 인도에서도 우리를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해 만난 김에 사진 한 장 찍어 추억거리로 남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던 암베르 포트에서 만난 한 인도인


 아그라뿐만이 아니었다.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꾸준하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았다. 자이푸르에서 BTS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의 가족과, 암베르 포트에서는 혼자 여행 온 아저씨와, 어떤 절벽에서는 학교 땡땡이친 내 또래 20대 무리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사진 요청을 받다 보니 내가 인도에서 조금 통하나 싶은 우쭐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2주 만에 사그라들었다. 집에 갈 때 즈음되니 사진 찍자는 요청도 귀찮아졌다. 몇몇 유명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 귀찮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유명인들과는 달리 이들의 관심 덕분에 먹고사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귀찮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인종차별의 일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이 아시아인을 보고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는데 놀리려는 목적으로 사진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내 사진을 SNS에 몰래 올리면서 놀리거나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방식이다. 혹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희롱하기 위해 사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사진을 요청하고는 이후에 뒤에서 인종 차별적 성희롱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 누구도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세상이다. 인종차별 없이 단순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는 즐거움에 찍는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마치 유토피아처럼 세상이 바뀌어도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다. 어딘가에는 비도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인 셈이다. 물론 그런 행위를 하는 가해자가 가장 큰 문제지만, 짧은 여행 동안 그들을 바꿀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 그러니 적당히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안전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허락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겠으면 모든 제안을 거절하면 된다. 결국 이런 문제는 행동에 대한 딱딱한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유연하지만 확실한 대처가 필요한 법이다.


 다행히 나에게 다가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에는 신기함이 많이 보였다. 물론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이 얼굴에 써 두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 왔는지 혹은 왜 왔는지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과 함께 다가오려는 얼굴에는 순수한 궁금증만 가득 한 기분이었다. 생김새가 다른 또 다른 인종에 대한 호기심과 친근함으로 느껴진 것이다. 결국 파생될 위험성이나 인종 차별에 대한 생각은 각자가 할 몫이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결국 예전 한국인들이 백인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감정과 비슷했다. 그들도 내 사진을 찍어가 이야기를 나누듯이 나도 여행이 끝난 후 그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여행에서의 기쁜 감정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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