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Sep 01. 2020

인도 기차에 대한 괴담과 진실

우리는 너무 많은 괴담을 안고 인도를 대했다.

 인도 기차에 대한 괴담은 셀 수 없이 많다. 객실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말도 있고, 화장실은 푸세식이며, 객실은 모두 더럽기 짝이 없고, 자기 자리라도 남들과 나눠서 앉아야 하고 연착에 지연은 필수고… 이런 다양한 불안감은 기차를 타기 전부터 걱정을 심어주고 괴롭혔다. 불안해도 어쩌겠나. 우리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기차와 숙소가 예약되어 있는 한 타고 가야 하는 것을.


 기차역에 들어서자 13개나 되는 플랫폼들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인도의 정체성이 갠지스강보다 이곳 기차역에 더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있고, 타지방으로 가기 위한 현지인들도 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배낭이나 캐리어를 든 사람도 있고, 서울로 자식 보러 상경하는 할머니처럼 광주리 가득 먹을 것을 이어 맨 사람도 있다. 긴 시간 기차를 버티기 위해 매점에서 이것저것 사며 가방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몰래 뻥튀기 장수처럼 도시락 같은 음식들을 플랫폼 안 사람들에게 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는 기차를 놓치거나 혹은 다른 기차를 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속으로 숨기고 말없이 서 있었다. 전쟁터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끈으로 연결한 듯 우리는 서로 잃어버리면 다시는 못 찾을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기차 연착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도이기 때문에 적어도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1초 1초 돌아가는 초침을 가만히 쳐다보며 명상을 하던 찰나 별안간 플랫폼 안으로 기차가 한 대 들어왔다. 한 시간밖에 기다리지 않았는데 벌써 들어온 것이 믿기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세 번이나 불러 세워 물어봤다. 아그라로 가는 기차가 맞다고 세 번이나 확답을 받은 후에야 우리는 기차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만 기차에 타서도 의심과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끊임없는 기차에 대한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친구와 나의 자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차표 예약을 너무 늦게 한 탓에 우리는 떨어진 자리를 예매했다. 인도 기차는 다양한 등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비싸지만 여유롭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침대 칸 1등석부터 가장 저렴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복도에 그득히 앉아가는 좌석 칸 3등석까지가 수많은 단계로 나눠져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그중 적당히 안전하지만 적당히 저렴한 자리를 구하려 했다. 침대 칸의 2등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예약하려 했는데, 그 2등석도 또 단계가 나눠져 있었다. 며칠간 2층 침상이 3개 있는 곳을 예약할 것인가, 3층 침상이 3개 있는 곳을 예약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와중에 어느덧 자리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결국 따로 객실이 분리된 두 자리 말고는 남지 않았고 이 자리마저 사라져 버릴까 봐 서둘러 떨어진 채 예약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한 칸 떨어진 우리는 마치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인도 기차에 올라탔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한 셈이었다. 객실로 혼자 찾아가니 6명이 같은 공간을 나누는 2층 침대 3개가 있는 객실이었다. 객실이라고 해도 복도가 한가운데 있어 양 옆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다행인 점은 2등석이라 그런지 유튜브나 사진으로 보던 내 자리에 무단으로 앉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었다.


 침대는 생각보다 안락했다. 창문 틈을 통해 날카로운 바람이 들어왔지만, 이를 대비해 청테이프를 가져와서 다행이었다. 테이프로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길을 막고, 거치된 이불로 벽을 한번 더 막으니 찬 기운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버틸만했다. 인도 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안락함이라면 평소 듣던 괴담들에 비해서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미리 구비해둔 간식과 물은 3일은 버틸 만큼 많았다. 


 하지만 담배를 필 수는 없었다. 객실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에 장시간 담배를 피우지 못해도 그다지 흡연의 욕구가 엄청나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피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객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열고 담배 피우는 사진을 분명 봤었지만, 기차는 당연하게도 전면 금연이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오래전 금연 구역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사진을 본 것이었다. 때문에 흡연에 대한 욕구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기차의 의외의 면모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객실이 2등석이라 그런지 몰라도, 유럽이나 한국의 평범한 기차같이 깔끔한 편이었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할 줄 았지만, 먼지만 조금 있을 뿐 쓰레기는 한 톨 없었다. 게다가 화장실도 좌변기라 조금 불편할 뿐, 냄새도 나지 않고 깔끔했다. 물론 2등석 이상의 위생 상태만 깨끗할 수도 있고, 이 기차가 특별히 오늘 청소한 기차일 수도 있지만, 예상외의 깔끔함은 이전의 선입견을 지우기 충분했다.


 여행에서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는 미리 다녀온 사람들이 전해주는 정보에 의해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입견으로 인해 여행에서 놓치는 것이 많다. 물론 치안이나 위생에 대한 선입견으로 미리 대비하는 것은 좋은 자세다. 치안이나 위생 문제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당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불편함이나 관광에 대한 선입견으로 불편하다고 하니까, 볼 것이 없다고 하니까 가지 않는 것보다는 이왕 여행을 떠났으면 실제로 어떤 지 몸소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의외의 쾌적함을 안고 떠난 기차는 요람에 든 아이처럼 승객들을 재웠다. 말소리가 하나둘씩 줄어들자 나도 읽던 책을 든 채로 잠들었다. 하지만 아직 근육 사이에 남은 긴장 때문에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인터넷 되지 않는 스마트폰은 벽돌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이라도 하나 다운로드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며 한 칸 너머에 있는 친구에게 가서 지도를 봤다. 이미 기차는 8시간 동안 인도 대륙을 가로질렀는데, 지도는 온 만큼 더 가야 한다고 약을 올렸다. 한데 조금 이상했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 철로는 거의 직선으로 깔려 있는데, 우리 기차는 점차 북상하고 있었다. 표를 확인하니 우리가 탄 기차는 확실했고, 목적지도 확실하니 돌아간다고 밖에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 식당의 위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