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 구성의 차이
이준석 국민의 힘 당 대표의 당선 이후 MZ 세대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MZ 세대가 처음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0으로 시작하는 2000년대생이 성인이 되기 직전인 2018년 겨울 즈음이었다. 다가오는 2019년을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한 리포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리포트들이 주목한 새로운 소비층이 이제 새로 성인이 된 Z 세대라 불리는 이들과 사회 초년생이 된 밀레니엄 세대를 포괄한 MZ 세대였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뭔가 이전과 다른, 이기적이긴 하지만 자기들만의 문법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세대였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분석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젊은 세대가 진입하지 못했던 주류 정치 사회의 중심으로 MZ 세대가 첫 발을 내디디니 이 세대에 대한 관심은 폭발했다. 각종 주류 언론에서 MZ 세대는 대체 기성세대와 어떤 차이가 있길래 기존 정치 언어로 통하지 않는 것인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젊은 층에 관심이 없는 듯했던 주류 세대가 관심을 가지니 나도 2030의 일원으로 반갑기는 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관심은 새롭게 등장한 세대의 현상을 분석하는 것에 그쳤다. 새롭게 학계에 보고된 동물을 보고하듯이 MZ 세대가 가진 특징을 줄줄 나열하기만 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고, 디지털에 익숙하니 모바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소유보다 공유를, 상품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특징이 있고…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경험을 중시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다. 마치 모두 같은 연구 보고서를 보듯이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껏 해봐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디지털 세대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끝이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디지털 세대라 컴퓨터와 친숙한 건 MZ 세대가 가진 특징 중 하나이지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이유를 분석하지 않은 건 단지 MZ 세대의 특징을 활용하는 것이 MZ 세대를 제외한 세대들이 필요한 전부였으니 말이다.
언제나 새로운 세대를 이름 짓는 건 그 세대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기성세대가 신진 세대의 새로움을 분석하기 위해 붙인다. 개미들이 스스로 개미라 부르지 않는 듯이, 386 세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386 세대다!”라고 천명하지 않았다. 새로운 청년층이 대거 등장하면 줄곧 386세대, X 세대 등 이름을 붙이고 특징을 나열하는 건 직전 기성세대였다. 새로 등장한 세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이용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보이긴 해도, 신입 사원으로 혹은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한 세대이니 이용이라는 말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세대를 통칭하는 이름을 붙이고 특징을 잡아내는 건 중요했지만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이유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이유까지 알고 분석한 결과들은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럼 우리 MZ 세대는 왜 앞서 말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까? 과연 우리도 모르는 새롭게 한국을 흔드는 세대의 특징은 어디서 온 것일까?
MZ 세대의 특징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개인주의다. 특히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되고 서서히 회사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덕분에 기성세대의 집단주의와 부딪치며 부각되고 있다. 회식을 싫어하고, 회사보다는 개인 시간을 더 중시하고, 단체 생활보다는 개인 생활을 즐기고, 자유롭고 수평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개성을 존중받기를 원하는 개인주의의 MZ 세대. 우리들은 왜 개인주의적으로 살게 되었을까.
모든 사회 현상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하나의 이유로 모든 현상을 망라할 수는 없다. MZ 세대의 개인주의 역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이 아닐까 싶다. MZ 이전 세대와 밀레니엄 이후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인터넷 친밀도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밀레니엄 이전의 세대가 성장할 때는 인터넷이 없었다. 반면 MZ 세대에게 인터넷은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지내며 성격 형성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매체였다. 단순히 컴퓨터 게임이나 타자로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 덕분에 이 세대는 사람끼리 맺는 관계에서 다른 세대와 큰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과거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거나 없던 시절에는 약속을 잡을 때도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나자”라는 확실한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 만날 수 없었다. 덕분에 모임이나 사회가 형성되면 자주 모이기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만남의 약속이 있어야 지속 가능했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형성은 면대면이 필수였고, 운과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어렵게 관계가 형성된 집단을 나가 다른 집단을 만들거나 들어간다는 것이 어려웠으니, 한 번 만들어진 집단은 끈끈한 결속력을 가졌다. 그러니 한 번 관계를 만든 집단에 속하면 정체성을 가지기 쉬웠다. 학교 친구 모임, 학교 동창, 회사 동기 모임, 회사 선후배 등 다양한 ‘우리’라는 정체성이 ‘나’라는 개인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더욱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러니 한 번 결성한 ‘우리’에서 벗어나기 두려워한다. 때문에 힘들게 만든 ‘우리’ 집단 안에서 빠져나와 거대한 ‘우리’와 맞서는 두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했고,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개미처럼 집단주의가 내면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MZ 세대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 덕분에 전혀 다른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세대는 휴대폰과 문자, 더 나아가 인터넷 메신저 등 어린 시절부터 개인과 개인의 연락이 간편하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자랐다. 특히, 이 세대의 주된 연락 수단은 인터넷과 문자였다. Σユl엽ユㅊŀ칸ⓘ™, 因ㄴr는∑ㄴrㄷr。와 같은 알아볼 수도 없는 특이한 아이디가 주를 이루던 버디버디는 초등학생부터 중, 고등학생의 필수 메신저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우선 버디버디부터 켜 두는 것이 당연한 일과였다. 마치 카카오톡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선 켜 두어야 했다. 그러다 누군가 연락이 오면 채팅하는 식의 연락은 당연했다. 이후에 버디버디의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쇠퇴의 길을 걷자 치고 들어온 건 싸이월드와 함께 했던 네이트온이었다. 지금의 카카오톡과 비슷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을 이기지 못해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인터넷뿐만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 휴대폰을 가진 친구는 매우 드물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주변 친구들 중 휴대폰 없는 친구를 찾기 어려웠다. 유료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버스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가능했던 문자 메시지는 MZ 세대의 필수 연락 수단이었다. 이는 2005년도에 나온 한 신문 기사로도 알 수 있다.
“SKT도 지난해 6월 SMS 14억 건에서 올해 6월 28억 1300만 건을 기록해 음성전화 38억 4900만 건을 급하게 추격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신세대들일수록 단순한 전화기가 아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라며 “앞으로는 음성만이 아니라 문자, 영상, 음악 등을 주고받고 콘텐츠를 자유롭게 다운로드하는 멀티미디어 단말기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용석, 전자신문, "엄지가 목소리 눌렀다", 2005.07.28)
스마트폰을 예견한 건 나중에 다시 놀라기로 하고, 아무튼 이런 가시적인 통계까지 나온 문자와 더불어 인터넷 메신저는 MZ 세대의 가장 중요한 연락 수단이었다.
이런 문자와 인터넷 메신저는 전화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전화는 양 쪽 모두의 통화의 동의가 있고 동시에 소통해야 하는 양방향 매체다. 대면이 아니지만 대면과 비슷하게 한쪽이 말을 하면 다른 쪽은 언어적 호응을 통해 둘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문자는 전화 같은 대면 연락에 비해 더 자유로웠다.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말을 던지고 나면 끝이었다.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면 되고, 또 동시에 여러 사람들과 연결이 가능했다. 일방향이면서 다면적인 매체인 셈이다.
그러니 개인과 개인의 연락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사회 형성의 중심은 단체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었다. 모두의 가치와 목표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집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 중심의 개인적인 집단이 형성된 셈이다. 그래서 MZ 세대는 집단보다는 ‘나’를 우선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MZ 세대가 개인의 권리를 이전 세대보다 쉽게 요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면 이해하기 쉽다.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는 나에게 있는 것인데, ‘나’라는 사회에 속하지 않은 기성세대의 상사가 나의 권리를 침해하며 회식을 강요하고, 연차 쓸 권리를 박탈하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을 보다 쉽게 이용하다 보니 개인의 권리 침해를 쉽게 침범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공론화되기 쉬웠고, 덕분에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기 쉽다는 점도 한몫하게 되었다. 여기에 MZ 세대 중 일부의 이기적인 사람들이 편승해 책임 없는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사회 속에는 물 흐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여기서 다루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MZ 세대인 우리는 다른 곳의 소속감을 원하지 않는가?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어딘가 속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개인주의는 “나 혼자 있는 게 좋다.”라는 말도 아니고, “나 말고는 필요 없다”라는 이기주의도 아니다. MZ 세대는 오히려 과거보다 인터넷으로 더 활발히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며 다양한 집단으로 들어간다. 다만 스스로 원해서 속하는 집단과 피치 못해 속할 수밖에 없는 집단의 소속감은 다른 개념이다.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겠지만, 위의 이야기와 이어서 말하자면 개개인이 스스로 만든 사회의 중심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소속에 대해 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학연, 지연, 혈연이 이전 세대보다 덜 한 이유다. 만약 속한 집단이 나라는 사회 구성에 필요하거나 긍정적이라면 그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은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고 집단을 위한 희생마저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 사회 속으로 들어온 집단을 반기고,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연결 고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MZ 세대는 개인주의적이다 를 넘어 이기적이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기성세대에게 이런 소속감은 나를 보호해주지만 나 또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MZ 세대들에게는 집단은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회일 뿐이었으며, 집단은 나의 한 부분인 셈이니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뜻으로 집단에 소속되고, 또 다른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포함된다고 생각되는 소속감만큼만 노력하고 희생할 뿐 그 이상 무언가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개인주의적이라고 주어진 모든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책임감을 받아들였을 뿐이지만 이를 기성세대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집단을 생각하는 척하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느낄 수는 있다. 이런 우리가 그래도 이기적이라고 생각 든다면 어쩔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과 집단을 판단하니 서로 오해가 생긴다. MZ 세대는 새로운 생명체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이며, 그들이 낳은 자식이다. 다만 서로 다른 사고관을 지닌 사람들이니 서로 다른 현상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괴리감을 해결할 수는 없다. 서로의 성장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지 신기한 생물체 보듯 특징만 나열하고 끝나면 결국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처음 만나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서로의 사고를 분석하고 이해하며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MZ 세대라고 영원히 새로운 세대로 남을 수는 없으니 우리도 이전 세대 그리고 다가올 알파 세대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