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팬을 버려도, 팬은 팀을 버리지 못한다.
올 시즌 프로야구가 막을 내렸다. NC 다이노스가 창단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우승 트로피의 주인이 되었다. 첫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의 승리 세리머니에는 웃음과 울음이 공존했다. 특히 우승 트로피를 구단 모기업인 NC 소프트의 상징인 게임 <리니지>의 집행검으로 만들어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모든 야구팬들을 흥미진진하게 해 주었다.
창단 첫 우승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 얻는 희열과 쾌감은 우승팀과 팬들의 몫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승리를 축하해줄지라도 함께 즐길 수는 없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이번 시즌 8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10개의 팀 중 8위. 맞다. 나는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다. 4년 연속으로 우승을 거머쥔 화려한 영광의 시절을 영위하다 이제는 비밀번호 같은 99688 (9등, 9등, 6등, 8등, 8등)을 전전하는 그 팀이다.
가끔 응원을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나는 이 팀을 응원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한탄이 나온다. 사람이 스포츠 팀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4~5세가량 가장 강한 팀에게 빠진다고 한다. 승패의 개념을 알아차릴 시기에 강한 팀을 좋아하며 이 시기에 빠진 팀에게 애착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 말고도 다양한 이유로 스포츠 팀에 빠지는 듯하다. 사는 지역이나 근처에 야구장이나 축구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아 팬이 되었을 수도, 류현진 같은 대단한 슈퍼스타가 있어서 팬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개인적인 일화 때문에 팬이 된 경우도 있다. 지인 중 어떤 한화 팬은 어린 시절 야구장 근처에서 장민철 선수를 만났지만 떨려서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야구공만 들고 우물쭈물거렸다. 그러자 장민철 선수가 친근하게 다가와 “사인받고 싶어서 그래?” 라며 냉큼 야구공에 사인을 해 주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줬다고 한다. 이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대화는 그를 아직까지 한화 팬으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팬이 되는 계기는 찰나일 수도 있고, 혹은 다양한 이유가 겹쳐져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내가 삼성 라이온즈에 빠지게 된 계기 또한 다양했다. 이승엽 선수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56호 홈런을 친 경기가 생애 첫 시청 경기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대구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단편적인 기억들로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삼성 라이온즈의 팬 중 한 명으로 스며들었다.
덕분에 행복한 기억들이 많이 생겼었다. 처음 야구장에 가서 선수에게 사인을 받은 기억도 있었고, 우승하는 순간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경험도 있었다. 물론 4번 연속의 우승을 가져다준 멋진 기억도 있었다.
다만 2015년을 끝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너무나 깊은 패배의 수렁에 빠져 있다. 게다가 한 때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펴줬던 선수들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팀에도 다양한 사건 사고가 터지며 휘청거렸다. 구단도 처리할 문제가 산더미이기 때문인지 팬들과 소통도 조금씩 단절되어 갔다.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할 팬과 팀 사이의 끈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NC 다이노스가 부러운 이유는 우승뿐만이 아니었다. 팀과 팬이 하나가 되어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였고, 결국 승리의 환호를 함께 누리는 기쁨을 맛보았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래도 삼성 라이온즈를 포기하지 못하고 응원한다. 단순한 과거의 영광뿐만이 아니다. 못할 때는 가슴을 치며 속으로 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팀, ‘내 새끼’라는 심정 때문이다. 이 ‘내 새끼’라는 심정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당장 한 경기를 져도 “내일부터 야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라는 선언을 하지만 어느새 다음날이 되면 슬쩍 점수를 검색해본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아무리 화가 나도 결국 내 팀은 내 팀이다. 부모님이 주는 알 수 없는 내리사랑처럼, 팀을 응원하는 이 마음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팀은 팬을 버릴 수 있지만, 팬은 팀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기나긴 어둠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라도 언젠가 다시 화려했던 승리의 영광, 그리고 팀과 팬들이 하나가 되는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어찌 되었든 우리 팀이라는 애증으로 팀을 응원한다. 그래도 삼성, 그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