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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의 유행은 어떻게 돌고 도는 걸까?

MZ 세대에게 신선함이란?

by 박희성

4월 재보궐선거 이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MZ 세대에 대한 관심이 쏠리며 30대 당대표가 선출되기도 했고,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한 여당의 다양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다음 대선을 미리 준비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중진 국회의원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틱톡으로 공개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2030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기자들과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 누구는 가발을 쓰고 젊게 개사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언뜻 생각하면 신선한 모습이긴 하지만, MZ 세대에게 큰 감흥은 없었는지 별로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에 정책 연구나 하라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MZ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MZ 세대의 호응은 없었다. 젊은 척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라 느낀 것일까, 아니면 이미 뒤돌아 버린 젊은 층들이 기성세대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진정한 공감이 아닌 선거철을 앞둔 표심 잡기에만 급급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보여주기 식 정치로 우선 표를 얻고 나면 다시 젊은 층을 무시하는 듯한 행보가 그동안 반복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런 모습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젊은 표심 잡기를 위한 다양한 행동을 처음 했을 때는 신선하고 신기한 모습이라 호응을 받았다.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진영에 따라 비판이나 호응이 갈리긴 했지만, 뉴스나 인터넷에 나올 정도로 큰 관심을 얻긴 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에 이미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은 이젠 더 이상 호응하지 않는다. 차라리 2030을 위한 정책적, 정치적 행보로 공략한다면 모를까 단순히 자신들을 봐 달라는 몸부림만 보여주는 건 이미 성인이 된 유권자들을 아직도 애 취급한다는 기분을 받기도 한다.


이번 기성 정치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동안 경험적으로 축적된 젊은 세대 표심 잡기의 전형이었다.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나기 십 수년 전에는 한 정치인은 프로게이머와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한 적도 있었고, 어떤 당은 총선 전에 모든 당내 의원들이 가발을 쓰고 춤을 쓰며 노래를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정치인은 선거철에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 이후 일어난 모든 행동과 거의 일치한다. 전혀 신선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성 정치인들의 청년층 구애를 정치적 입장이 아닌 인터넷 친숙도와 콘텐츠 소모 속도의 관점에서 한 번 바라보고자 한다. 과연 MZ 세대에게 신선함이란 무엇이며 이들이 좋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2030을 관통했던 2000년대와 2010년대 키워드 중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병맛’이었다. 인터넷 속어인 ‘병맛’은 말 그대로 ‘병X 같은 맛’을 의미했다. 비속어로 되어 있어 일부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 단어가 담은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신선함이다. 기승전결이라는 문법을 파괴하는 색다른 시도의 만화, 게임, 동영상들이 당시 인터넷을 등에 업고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갔다.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지만, 그래도 MZ 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신선함이라는 의미에서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MZ 세대에게 병맛이 유행한 이유는 인터넷에 있었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 이전의 유행어나 콘텐츠들은 거진 TV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러다 보니 TV 프로그램이나 CF로 나온 유행어나 농담을 전 세대가 함께 공유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젊은 층들 사이에 돌던 유행어들도 존재했지만, 파급력 있게 퍼지지는 않고 집단이나 크게 봐서 세대 안에서 돌다 사라지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에 익숙했던 세대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는 인터넷에서 주로 나오게 되었다. 인터넷 중에서도 커뮤니티의 공이 가장 컸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새로운 콘텐츠의 제작의 장이 되어주었고 생산, 배급하는 창구가 되어 준 덕분이었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신돈>의 재생산

2000년대 초반부터 엽기로 통하던 커뮤니티 속의 새로운 유머들과 콘텐츠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향상을 보였다. 주류 매체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들과 다르게 개인이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속도의 기하급수적 발전과 더불어 함께 성장한 다양한 유머 사이트 안에는 개인들이 만든 콘텐츠가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그 안에서 재미없는 콘텐츠들은 곧바로 도태되었고, 소소하게 재미있는 콘텐츠들은 소비되긴 하지만 물 흐르듯 인터넷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범람하는 콘텐츠와 유행어들 중 재미와 신선함을 겸비한 작품들만 수면 위로 올라와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인터넷이 콘텐츠 제작과 유포의 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창작욕을 지닌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콘텐츠들이 제작되고 재생산된 덕분에 사람들은 신선한 재미를 더욱 갈망하였다. 결국 이런 열망들은 기괴하지만 그 안에 재미가 숨어있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부조리적인 코미디의 재탄생인 병맛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병맛’을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밈(다양한 설명이 있는 단어지만 쉽게 풀어 말하자면 그냥 인터넷 유행어)들은 이런 신선함에서 탄생하였다.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오히려 신선한 덕분에 유지되었던 ‘병맛’이었다.


그러나 병맛 같은 신선함은 첫 주자들에게만 효과적이다. 이후 나타나는 병맛의 콘텐츠가 있다 하더라도 이전에 본 적 없는 색다른 재미가 있어야 신선하지 ‘병맛’만 따라 한다고 한들 재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는 유행어들이 거진 그렇듯이 병맛이라는 말도 이젠 진부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번 기성 정치층의 춤사위와 게임, 노래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대 중후반 UCC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상 구성과 콘텐츠로 취급되었다. 만약 그때 했으면 신선하다는 평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MZ 세대라는 색다른 세대의 관점과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에 호응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니 다른 포인트를 잡고 이야기해보자. MZ 세대의 유행이나 관심은 어디서 생성되어 퍼지는 것일까?




앞서 말한 듯이 MZ 세대가 인터넷과 자라며 생긴 또 다른 특징이 바로 커뮤니티의 확산이다. 대형 매체에서 생산한 콘텐츠가 아닌 커뮤니티 내부에서 생산된 정보들과 파생된 유머들은 그 규모만큼 접근하기도 쉽고 개인이 만들어 내기도 쉽다. 대량의 정보들이 있는 만큼 신선함이 중심을 이뤘는데, 이 신선함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기존에 있는 콘텐츠나 유머, 유행이라도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냈다면 재생산되기 충분했다. 몇 년 전 갑자기 폭발하게 된 <타짜> 재해석이 바로 이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2006년에 만들어진 영화 <타짜>는 이미 수작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각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부터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 연기력까지 최고의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지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 2019년, 갑자기 악당으로 출연한 김응수 배우 역의 곽철용이 각광받았다. 커뮤니티 내부에서 파편적으로 즐기던 명작 영화였지만, 어느 순간 영화의 신선함이 떨어지니 다른 쪽으로 관점을 돌려 악당의 재발견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였다. 비슷하게 가수 비의 노래 깡의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면”의 재발견이 있다. 이렇게 기존의 콘텐츠도 새롭게 포장된다면 신선하다는 표현을 받는다.

커뮤니티에서 재해석된 후 전국을 강타한 <타짜>의 곽철용(김응수 역)

문제는 속도다.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MZ 세대의 새로운 유행은 생산 – 확산 – 폭발 – 쇠퇴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4 단계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 확산 방법과 소비 속도가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새로운 유행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갑자기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런 유행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건 대부분이 인터넷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의 설립 목적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추구하는 건 유머의 향유지만, 어떤 유머가 갑자기 뜰 지는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일종의 불특정 다수가 함께 들어가 있는 학창 시절의 교실 같은 느낌이다. 서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수의 친구와 어울리며 놀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의 농담을 듣고 반 전체 친구들이 웃는다. 그리고 그 농담은 순간 유행어가 되어 모든 아이들이 한 번 씩 이야기하게 된다. 마치 이런 상황처럼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유머는 뜬금없이 생산된다. 처음 보는 유머인지라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고 재미있다면 커뮤니티 내부 전체에 퍼진다. 다만 교실과 다르게 동시에 적게는 수백 명이, 많게는 수만 명이 들어가 있는 덕분에 반 전체에 퍼지는 콘텐츠는 생산된 콘텐츠에 비해 극히 적다.


남초, 여초, 진보, 보수,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하게 파편화된 커뮤니티에선 매일 이렇게 새로운 유행 콘텐츠가 탄생한다. 앞서 본 듯이 이전의 콘텐츠의 재가공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혹은 전혀 뜬금없는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기도 한다. 반에서 농담이 인정받으면 온 반으로 퍼지듯이 생성된 콘텐츠가 커뮤니티 안에서 신선하고 재밌다고 인정받으면 급속도로 확산된다. 갑자기 파생된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유머가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나타난다. 평범한 글에서 쓰이기도 하고, 댓글로 나타나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 콘텐츠가 그림이었다면 그 그림에 대한 다양한 변형의 그림들이 나오기도 하고, 유행어라면 상관없는 글이나 사진에도 쓰이고, 동영상이라면 비슷하게 만들어진 동영상이 퍼져 나간다.


이렇게 커뮤니티 안에 확산된 유머나 밈, 콘텐츠는 결국 확산 시기로 들어선다. 생성된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는 시기다. 커뮤니티와 커뮤니티 사이에는 보따리 장사꾼처럼 콘텐츠를 옮기며 등록하는 업로더들이 있는데, 이들 덕분에 접점이 없는 커뮤니티라도 콘텐츠가 공유된다.


여기서 이제 갈림길이 생긴다. 단순히 커뮤니티의 구성원들과 그 커뮤니티의 도덕관 안에서만 허용되는 유머와 맘이라면 콘텐츠가 다른 커뮤니티에 올라오더라도 큰 유행이 되지 않는다. 한 때 가장 지탄받은 커뮤니티인 일간 베스트 저장소 내부에서는 다양한 밈들이 있었는데, 도덕적으로 그 내부에서만 향유될 수밖에 없는 콘텐츠들이었다. 전 대통령의 희화화, 각종 참사의 희화화 등 사회적으로는 지탄받는 콘텐츠였지만, 커뮤니티 내부 도덕관에서는 용인되었다. 하지만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기엔 용인되지 않았다. 도덕적 문제가 없고 다른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충분히 향유될 공통점을 가진다면 이제 전 인터넷 상에서 폭발하며 MZ 세대 모두가 알고 즐기는 인터넷 유행이 탄생한다.


여기서 이제 문제가 생긴다.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인터넷 전체에 퍼질 정도의 밈과 유머라면 처음 생성된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너무 많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속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산과 확산 단계에서 소모된 시간이 적은 콘텐츠라면 모든 커뮤니티와 함께 통용되지만, 그 속도가 느리다면 파편적으로 유머가 통용되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형 미디어가 장악하던 시절, 유행어를 가장 많이 만들던 KBS의 <개그콘서트>는 보통 한 코너에 2~3개 정도의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기에 유행어는 천천히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 서서히 오르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한 코너의 지속은 개편 시기에 맞는 6개월 정도였다. 유행어가 물오르고 퍼지고 사라지기까지 몇 달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속 MZ 세대의 콘텐츠들은 그에 비해 빠른 속도로 사라지며, 사라지는 타이밍을 알기도 힘들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진부하고 익숙한 콘텐츠지만, 누구에게는 이제 새로 알게 된 콘텐츠이기도 하니 그 사이 선을 맞추기 어렵다.


더군다나 개그콘서트처럼 모두가 다 유행되는 타이밍과 힘을 다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MZ 세대와 기성세대 간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타이밍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MZ 세대의 커뮤니티에는 “공중파에 밈이 등장하는 순간 그 밈은 죽었다.”라는 말이 나타났다. 공중파에서 인터넷 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도 용인되는지, 일부만 아는 그런 유행이 아닌지, 기성세대에게도 통할 만한 밈인지 확실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퍼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늦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콘텐츠의 유행에 대한 MZ 세대의 반응은 기업 마케팅에서도 드러난다. MZ 세대에게 흥미를 끌기 위한 마케팅을 한다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어떤 콘텐츠를 사용할 것인가, 혹은 주류 사회에도 통할 것인가 고려해야 되고, 앞서 언급한 이미 죽은 밈이 아닌가 판단도 해야 한다. 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구상해서 진행하지 않으면 기껏 타겟팅해도 큰 호응 없이 지나갈 수 있고, 지탄받아 기업 이미지에 흠이 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을 돌파해 성공한 콘텐츠는 기존의 마케팅을 초월하는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MZ 세대에 대한 분석과 파악에 열을 다하고 있다.

MZ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인터넷 덕분에 빠른 콘텐츠의 생산이 가능한 만큼 빠른 소모가 일어났다. 춤을 추고 노래하던 중진 의원들의 시선에서 자신들의 시도는 참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소비될 만큼 소비된 콘텐츠를 뒤늦게 따라간다는 것은 아쉬운 선택이었다. 떠나버린 민심, 정책적 불만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MZ 세대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콘텐츠 사용 역시 호응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성세대는 MZ 세대가 노는 판에 끼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비롯해 많은 기성세대의 인원들이 MZ 세대와 함께 어우러지며 콘텐츠를 향유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히 MZ 세대는 ‘이런 콘텐츠 좋아한다고 하니 이거 따라 해 보자’라는 진부한 생각이 아닌,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속 유행을 확실히 파악하고 빠르게 시도하는 ‘신선한’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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