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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by 박희성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이 책의 캐치 프라이즈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애초에 언급했고, 옮긴이 역시 지적했듯이 ‘세계사’라기보다는 유럽 위주의 서양사, 그런데 오리엔탈을 약간 곁들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제목에 나타났듯이 작가는 훌륭한 농담을 책에 잘 녹여내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짧고 선명하게 그린 작가는 강의 시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교수님처럼 이야기를 풀어간다. 서양사를 기준으로 역사를 표현한 자신의 시선 조차 농담을 곁들여 잘 변명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 사회는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도달해 (물론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은 국가들도 많지만) 서양식 사고와 체제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책은 이런 현대 사회로 오기까지 왜 현대 문명이 서양의 사고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작가는 주요 사건, 악당, 도시, 영웅과 같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를 그린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새로운 사실들, 어설프게 알던 잘못된 진실들 또한 파헤쳐 준다. 덕분에 역사 속에 숨겨진 사실들이 현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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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발견했을 때는 ‘가벼운 농담’이라는 말에 끌려 구매했지만, 책 속에 담겨 있는 많은 담론들과 중요하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 덕분에 오랜만에 공부하듯 밑줄까지 쳐 가며 읽게 되었다. 공부하듯 이라는 말에 조금 움츠러들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얇은 지식이 넓어지는 기분이라 좋다. 덕분에 우아하게, 그리고 짧게 46억 년의 역사를 다시 훑어볼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탐닉하며 지나간 사실 속 숨어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알아갈 수 있어 재밌다. 하지만 그보다 과거를 바라보며 지금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류의 오답노트인 셈인 덕분이다.


책을 끝내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런 징조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징조가 나타날 때 우리는 노천 호프집에서 10월의 햇살을 즐기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역사에 관한 서적을 읽는 즐거움이 이 한 문장에 녹여 있었다. 곧 닥쳐 올 거대한 악몽을 모르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던 과거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곧 다가올 수 있는 어두운 미래를 모른 채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 당장 2년 전 오늘만 하더라도 코로나로 인류의 삶이 잠시 멈출 줄은 모르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작은 사건 하나를 방치하고 그냥 넘어간 안타까운 과거인들이 곧 크나큰 어둠을 맞이할 상황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거대한 어둠을 두려워 하지만 우리 시대의 작은 사건 하나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기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간이 흘러 미래인들이 우리를 보고 무지함에 안타까워할 것이다. 우아한 편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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