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에서 외로움을 외치다

외로움을 찾아서 (1)

by 박희성

낭만과 아름다움의 도시인 부다페스트. 가만히 서 있어도 핑크색 향기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고, 강은 찬란한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흘러가며, 건물들은 어디서 바라봐도 과거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엉킨 거리에는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하고 함께 있는 사람과 추억을 쌓으며 잔잔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낭만의 도시라 칭송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 여름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는 홀로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 온 이후부터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외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만나는 풍경과 문화 덕분이었다. 어디를 가도 색다르고 처음 만나는 장소라 외로움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탓에 피로감이 먼저 찾아왔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아까웠다. 가끔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며 맥주 한 잔을 마실 때는 함께 마실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외롭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하루 동안 있었던 여행을 돌이켜보며 음미하다 보면 외로움은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러다가 숙소에 같은 여행자들이 들어오면 도시에 대한 감상을 함께 나누거나 혹은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다른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그러니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이렇게 외로움에 사무친 기억은 없다. 아마 직전 도시였던 프라하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를 지나온 때문이었을까?


프라하 역시 부다페스트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이 사랑한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부다페스트가 낭만의 도시라면 프라하는 사랑의 도시다. 프라하에는 이미 완성된 사랑이 가득하다. 어디를 가도 연인들이 손을 잡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달콤한 사랑에 흠뻑 젖어버린 도시는 길거리 악사의 노래마저 사랑이 가득하다. 사실 프라하에서 만난 연인들은 그 어떤 다른 도시에서 만난 연인들보다 많았고 더욱 로맨틱했다. 고풍스러운 프라하 성에선 내려다 보이는 시내를 배경으로 연인들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모든 커플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카를교 역시 연인들이 가득했다. 혼자 온 사람에겐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솔로의 손을 잡아주는 건 다리 위에 서 있는 동상뿐이고,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넜다.


이렇게 사랑하는 연인들이 가득한 프라하와 다르게 부다페스트는 무언가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간질거리는 도시다. 물론 부다페스트 역시 연인들이 많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인연이 길모퉁이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도시 어디서라도 첫눈에 반할 사랑이 펼쳐질 듯한 기분이다. 이곳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하는 기차로 영화가 시작되는 <비포 선라이즈>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낭만의 도시로 와서 인연을 기대하는 건 죄가 아니다.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 때문에 인연을 기대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커졌을 수도 있다. 남녀 혼숙이었던 게스트 하우스에는 많은 젊은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안에는 이미 먼저 와 있던 남자와 여자가 반겨 주었다. 캐나다에서 온 남자와 독일에서 온 여자는 이 도시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마음이 맞아 함께 도시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혼자 여행을 온 나보다 함께 여행을 하는 둘은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있었다. 특히, 낭만적인 도시의 분위기 덕분인지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함께 하기에 외로움보다 즐거움이 자리하며 더 풍성한 여행이 된 셈이다.


이들을 보니 나는 혼자 있다는 사실이 더욱 와닿고, 때문에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생각보다 커플이 되지 못한 감정뿐만이 아니었다. 낭만은 사랑만 의미하지는 않았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친구들과 렌터카를 빌려 다 함께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동년배의 무리를 보니 한국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생각났고,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행복한 가족들을 보니 집에 있을 우리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냥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그 감상을 누군가와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탓이었다. 결국 이 낭만적인 도시 한가운데 나 혼자 만이 누군가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안에 숨어있던 외로움을 슬쩍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부다페스트에서 나도 모르게 외로움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혼자 누워 있는 침대 위에서 ‘외롭다’라고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외로움은 이전부터 오래된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외로움과 단 둘만의 데이트였다. 여행을 떠나지 않고 일상을 살던 때에는 더욱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에 오를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문득 외롭다 라는 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가끔은 하루 종일, 가끔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조차 외로움과 고독은 떠나지 않았다. 낯선 밤에 혼자 외롭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심할 때는 혼자가 아니어도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뭔가 시끌벅적한 모임 한가운데에서 다양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습관적으로 ‘외롭다.’라는 말을 혼잣말로 되뇌곤 했다. 오래전부터 하던 말인데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한 혼잣말이다. 이전에도 뭔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다. ‘전역하고 싶다.’ 이미 전역한 지 오래였지만 이 말은 한동안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군대도 아니고 사회에 나와서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마치 나도 모르는 마법의 주문처럼 처음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은 이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마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였던 <꺼내 먹어요>의 한 구절을 변주한 말이었을 테다.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중독성 있는 이 노래는 군생활 중에 발표되었다. 그래서 힘든 시간 동안 위로를 받고 싶을 때마다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였다. 귓가에 맴돌던 이 가사는 집이 아닌 전역으로 바뀐 채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이후에도 내 머리를 헤집었다. 노래에서 말하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안정이 있는 집이 아닌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인 집에 있는 외로움에서 나온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군대에서 몸만 빠져나온 전역을 한 후, 정신적인 안정이 되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치여 살기 바빠 하루하루 혼자가 되어가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내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이 바로 ‘전역하고 싶다’였다.


머리에 박힌 자이언티의 노랫말은 또 있었다. 돌이켜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술에 취하면 ‘행복하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말은 또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에서 나오던 가사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가수는 머릿속에 가사를 참 잘 집어넣는다. 한 소절의 노래 가사에 불과했지만 외로움에 지쳐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술에 취해 내뱉는 다짐이자 제안이다.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하는 듯한 말이기도 한 말들이다.


그런데, 왠지 외롭다 라는 말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 같다. 행복하자는 말도, 전역하고 싶다는 말도 언제부턴가 쓰지 않지만 외롭다는 말은 줄곧 써오는 중이다. 말할 상대가 있어도 외롭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모두 곁에 있어도 가슴 한편에 외롭다는 말이 혼자 맴돌았다. 궁극적으로 외로움과는 헤어질 수 없는 관계로 남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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