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찾아서 (2)
부다페스트에서 갑자기 느껴진 외로움은 결국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가 없어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함께 있지만 나는 그 누구와 함께 있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낭만의 배경 인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느껴지는 외로움이라는 존재했다.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고 있을 때도 존재하던 이 고독은 여행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여행으로 잠시 잊고 있던 나의 한 부분이었다. 언제나 함께하고 있지만 인지하지 않으면 까먹고, 적막함이 찾아오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무언가 그리워하고 있고,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다. 고독, 고립, 소외, 쓸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로움. 다양한 단어들이 존재하는 만큼 각기 다른 감정을 말한다.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을 의미한다. 함께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고독은 내가 스스로 세상과의 문을 닫을 때 나온다. 고립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 버린 외톨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일어났다. 그러니 고립된 사람은 마치 무인도에 혼자 버려진 듯한 외로움을 겪는다. 소외는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려진 상태다. 고립과 마찬가지지만 물리적인 상태의 의미도 포함한 고립보다 더욱 강한 외로움이다. 쓸쓸함은 외롭고 적적한 상태다. 마음 한편에 낙엽이 들어 있는 듯할 때 우리는 쓸쓸하다고 한다. 추운 겨울은 오지 않았지만 따듯함이 쌀쌀한 바람으로 바뀐 듯한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는 외로움. 외로움은 사전적으로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그러니 모든 외로움을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고독한 외로움일 수도, 혹은 쓸쓸함일 수도 있다. 혹은 소외되어서 나오는 외로움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은 [외로움의 철학]에서 이런 다양한 외로움을 일시적, 상황적, 고질적 외로움으로 분류했다. [1]
일시적 외로움은 말 그래도 일시적인 외로움이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시끌벅적한 모임 가운데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퇴근 후 불이 꺼져 차가운 방문을 열었을 때 일어날 수도 있다.
상황적 외로움은 죽음이나 이혼 같은 인생의 격변에서 나타나는 외로움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부재에 대한 공백으로 느끼는 외로움이다. 살면서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이별의 아픔으로 생기는 상황적 외로움은 다행히도 새로운 애착 관계의 형성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나도 시간이 해결해 준 이후 다시 새롭게 인연을 시작하는 우리의 인생에선 언제나 또 만날 수 있는 외로움이다.
하지만, 고질적 외로움은 두 외로움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 자아에 뿌리를 내린 고질적 외로움은 외부 영향에는 시큰둥하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얼 하던지 상관없이 나에게서 나타나는 외로움이다. 비어 있는 감정의 실린더 중 어느 것이 비어 있는지 모른다. 때문에 언제나 외롭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깊이 없는 우물 같은 외로움으로 혼자 있어도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듯 외로움은 사랑이 없어서, 아니면 우정이 부족해서 혹은 그 이상 내 안의 무언가 비어 있기에 나타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원인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판단해 내적 외로움인지 아니면 외적 외로움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느낀 외로움은 과연 어떤 외로움이었을까. 분명한 건 지금 이 감정이 고립에 가깝다는 것이다.
고독을 느끼기 위해 혼자 떠나온 여행이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서둘러 도망친 다음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서 떠났었다. 그러니 고독과 고립 그 사이에 서 있고 싶어 혼자 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발적 고립 상태로 향한 여행이었다. 결국 혼자 자연 속에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만난 새로움으로 계속 외로움 위를 덧칠하며 잊으려 했다. 지금 당장 무언가 채우고 싶어 하는 내 빈 그림자를 억지로 무시한 채 새로움만 자극적으로 찾아 넣고 있었다.
결국 외롭다고 튀어나온 혼잣말은 고질적 외로움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게 비어 있는 무언가 채우고 싶어 하는 갈망이었다. 낭만의 도시인 부다페스트라서 생겨난 외로움이 아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고 전역하고 싶다고 말하던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이 다시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와도 외로울 뿐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이 외로움의 정체를 꿰뚫고 무엇이 나를 외롭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1] Young, J. E. (1982). Loneliness, Depression and Cognitive Therapy: Theory and Appl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