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자체로 사라지는 외로움이란 없다.
절대 공복에 보지 마시오!
존 패브로 감독의 <아메리칸 셰프>를 본 많은 사람이 남긴 감상평이자, 재밌는 경고다. 주인공이 유명 셰프이고,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음식을 통한 마음과 갈등 치유라는 점에서 다양한 음식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존 패브로는 MCU의 초석이 된 <아이언맨>의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언맨을 화려하게 장식한 카메라가 음식으로 향하니 화면 가득한 음식이 위를 자극한다. 파슬리가 듬뿍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 치즈만 가득하지만 노릇하게 구워진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푸드트럭에서 팔기 시작한 눅진한 쿠바식 샌드위치인 쿠바노스, 아들과 아버지를 이어준 달콤한 프랑스식 도넛인 베녜까지. 확실히 절대 공복에 보면 위험한 영화가 맞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국의 유명 셰프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음식에 혹평을 남긴 유명 평론가와 SNS로 설전을 벌이고 난 이후 해고를 당한다. 평론가와의 싸움이 SNS로 널리 퍼지는 바람에 재취업조차 되지 않자 칼은 이혼한 아내의 전남편으로부터 푸드트럭을 사고, 이를 재기의 발판으로 다시 일어난다. 영화에서 칼은 아들과 동료와 함께 푸드트럭으로 미국을 횡단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팔고, 내적 성장과 더불어 헤집어진 마음을 스스로 치료하며 아들과의 관계도 회복한다.
<아메리칸 셰프>는 멋진 음식들에 대한 영화임과 더불어 외로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아들과 아버지는 각자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아들은 부모님의 이혼 이후 아버지인 칼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외로워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차고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또한 은연중에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욕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쁜 아버지를 만나도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끝이다. 같이 있어도 함께 한다는 기분이 아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무언가 하면서 추억의 한 편을 장식하고 싶어 한다. 아버지가 뉴올리언스의 화려한 음식들을 소개하자 같이 여행으로 가자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아들의 외로움은 정서적 외로움이다. 함께 작은 추억을 쌓아가며 사춘기를 지탱할 친구로서 아버지가 필요한 아들이다.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아들이지만, 레스토랑의 셰프로 언제나 바쁜 아버지는 같이 장을 보거나 잠시 얼굴만 보는 것으로도 아들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칼은 아들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을 정도 바쁘다. 칼은 셰프로서 레스토랑의 모든 메뉴를 관여해야 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버지로서 책임감 때문에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긴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아들과 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셰프라는 정체성에 있기에 자신의 삶을 요리에 갈아 넣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한쪽으로 밀어 넣는 동안 칼은 아버지와 셰프라는 존재의 불균형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전처와 가족을 떠나 새롭게 만난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요리 철학을 완전히 펼쳐낼 수도 없다. 요리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칼의 모습은 일에 치여 살아가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칼은 결국 자신의 유일한 존재 가치처럼 여기던 요리가 혹평을 받고 나니 쌓여 있던 모든 분노를 분출해버리고 홀로 외로워진다.
일시적인 외로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복잡한 감정의 사슬이 칼을 감싸고 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요리이자 자신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요리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지만, 실패하였다. 그리고 옆에는 그 누구도 남지 않는 듯한 고독만이 쓸쓸하게 자리 잡았다. 칼의 외로움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보인다.
사실 이런 칼의 외로움은 어딘가 익숙하다. 무언가에 몰입하며 고독해진 사람들은 쉽게 외로워진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위해 직업이나 일에 몰두해 스스로 고립된다. 끊임없이 남들과 멀어진 채 자신만의 길을 뚫으며 삶의 목적을 찾아가지만 공허한 내면은 점점 커져만 간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길이 맞았더라면 성공의 달콤함이 잠시 외로운 내면을 보상해 줄 수 있다. 물론 근본적인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성공의 보상과 외로움의 충족은 애초에 다른 기제를 가진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외로움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실패의 씁쓸함과 외로움은 칼과 같은 사무치는 고통을 안겨다 준다.
이런 상처를 안고 있는 아버지와 그리운 아버지의 자리를 언제나 채우고 싶어 하는 아들은 (정확하게는 이혼한 전 부인이자 아들의 엄마까지) 미국 서쪽 끝 도시 LA를 떠나 동남쪽 끝인 마이애미로 향한다. 이곳에서 이들은 함께 푸드트럭 여행을 시작한다. 드디어 아들이 원하던 아빠의 빈자리가 여행과 요리로 채워진다. 칼 역시 공허했던 빈자리에 아들이 다시 들어오고 다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요리를 만든다.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둘이 간직할 수 있는 새로운 추억 덕분에 고립은 사라지고 빈 틈은 빠른 속도로 채워진다. 함께 하고 있으니 함께 몰입하면 될 뿐이다.
보기에 참 편한 영화다. 거친 갈등을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영화다. 서로 필요로 하던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처음 보는 다양한 음식들의 찬란한 향연을 구경하면 되는 따듯한 영화다. 이들의 여정을 함께 다니다 보면 관객도 이들과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빠와 아들, 심지어 관객의 외로움도 모두 사라진 푸드트럭은 마이애미를 떠나 미국을 횡단하며 예전에 칼이 아들을 데려가기로 약속했던 뉴올리언스로 향했고, 텍사스를 거쳐 다시 집이 있는 LA로 향한다.
이들은 함께 하고 있기에 외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LA에 가까워질수록 칼은 다시 혼자 있을 집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로움은 둘 사이를 치료했지만 혼자 LA의 집에서 머무르는 슬픔은 치료하지 못했다. 긴 세월을 통해 아들보다 먼저 깨우친 교훈이다. 행복했던 여행의 추억은 지금의 상처를 치료하는 반창고가 되지만 다시 삶이 바빠지면 둘 사이의 거리는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상처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한다.
긴 여행이 끝나고 칼은 아들을 전 부인에게 보내고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긴 시간 동안 비워 둔 집은 고독하고 쓸쓸해 보인다. LA에 남아 있던 집은 그동안 외로움을 잊고 살던 칼에게 외로움을 다시 상기시키는 초라한 요새다. 먼지 쌓인 집에서 칼은 끝내 홀로 되어 아들의 외로움을 이해했다. 그동안 아들이 온몸으로 표현하던 외로움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공허한 외로움이 그동안 칼에게 벗어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독하게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흔적이 이 집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여행이 끝난 칼은 성공했을까? 칼은 언제나 자신의 요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푸드트럭이 생겼다. 그렇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아들이 생각이 난다. 이제 칼은 알게 되었다. 외로움은 성공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성공 자체로 사라지는 외로움이란 없다. 외로움이 차라리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감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성취를 하던 성취는 나를 기쁘게 할 뿐 쓸쓸한 외로움을 없애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외로운 내면을 버린 채 살아간다. 성공한다면 외로움 따위는 사라질 것이라 믿고 말이다. 하지만, 공허하고 비어 있는 슬픈 내면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기회비용을 통해 하나뿐인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는 자기 선택에 달려 있지만, 고립된 채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은 실패의 부담을 감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함께 하는 누군가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끝내 뒤돌아보면 나로 인해 외로워하는 누군가가 보일 테고, 미안해진다. 물론 그 누군가에 나도 포함될 수 있다. 나를 찾기 위해 나를 버려서는 안 되는 셈이다. 결국 칼은 아들과 가족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즐거운 인생으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