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네 그리고 식탁
천재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창의성과 예술적인 감각 때문에 경외심이 생긴다. 단순히 한 작품에서 뻗어 나오는 아우라가 아니다. 작품을 위한 철학적 고뇌와 부단한 노력, 그리고 인생을 담아낸 순간의 역사가 모여 예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기에 우리는 예술을 보고 감탄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가끔 이렇게 말한다.
“대체 뭘 먹고 자랐길래 이렇게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와 같은 인간인 그들은 생각보다 평범한 음식을 먹기도 했고, 예술가만의 괴짜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특이한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다. 가난한 예술가였던 사람들은 오히려 당시 평범한 사람들보다 굶주리기도 했고, 술과 고기의 향란에 빠져 있던 예술가들도 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역사 속 한 획을 그은 예술가들의 음식에도 그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부터 삶과 동일하게 유지되던 예술의 철학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했던 예술가들이 과연 어떤 음식과 함께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자.
백남준 - 짭잘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인생
“시청자 여러분, 텔레비전이 고장난 것이 아님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다>가 전세계에서 위성 방송으로 중계될 때 당시 앵커가 한 말이었다.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백남준과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들이 TV가 고장난 것으로 오해할까봐 양해를 구했다. 백남준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의 작품을 본다면 아마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기괴한 선과 기계, 난잡한 화면에 지레 눈살을 찌푸리거나 혹은 화려하고 특별한 세계관 속에 숨어있는 예술을 향한 열정과 울림으로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만큼 백남준의 예술관은 현대 예술에서 그 누구보다 복잡하면서 확실하고 의미가 있으면서 찾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던 그의 예술관처럼, 그의 입맛 역시 모든 먹을 수 있는 것에 큰 차별을 두지 않았다. 부유했던 집안에서 자랐던 백남준은 다양한 음식에 대한 즐거움을 일찍 알 수 있었다. 일본과과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뉴욕으로 건너가 행위 예술가로 처음 자신의 예술을 시작했을 때는 돈이 없어도 없는 대로 샌드위치 같은 것으로 대충 해결했다. 그리고 밥을 먹는 시간과 돈을 자신의 예술에 투자해 80년대부터 서서히 자신의 두각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랬던 백남준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아무래도 장어덮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시절 일본으로 피신한 백남준은 종종 장어덮밥을 먹곤 했다. 달콤하면서 짭짤하고, 생강, 장어, 소스, 밥 냄새가 동시에 풍기는 장어덮밥. 심지어는 백남준이 타계하기 직전에 먹은 음식도 장어 덮밥이라고 한다. 이런 오묘한 복잡성에 끌린 백남준이 후에 화려하고 복잡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친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하는 거지요."라는 그의 명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색다르게 들려온다. 인생에 대한 한 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머리 속에 있던 장어덮밥이 떠올라 즉석에서 말한 것이 아닐까. 백남준의 아이같은 천진난만함과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를 떠올리면 마냥 거짓은 아닐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셰프가 되어버린 천재
<모나리자>부터 <최후의 만찬>, 헬리콥터부터 전차까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인물이자, 예술부터 과학, 수학, 의학까지 두루 섭렵한 희대의 천재다. 예술이나 과학에 대한 그의 업적은 세상에 익히 알려져 있지만, 요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프레스코 벽화, 초상화 같은 예술로 르네상스 시대에 인류에 대한 한 획을 그었고,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적 통찰과 발명으로 충격을 주었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당대에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21살이 되던 해 공방에서 친해진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식당에 취업했다. 시간이 지나고 부엌에 서면서 그의 예술적인 감각을 음식으로 펼쳐낼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시대를 앞서가버리고 만 그의 천재성 때문일까, 그는 그의 음식을 매우 (지금 기준으로)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만다. 마치 음식을 담는 접시가 도화지가 된 듯 한 폭의 그림을 담아내기 위해 과일이나 꽃으로 세련된 모습의 플레이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너무 예술적이었던 음식은 당시 푸짐한 양을 원하던 손님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는 한이 있어도 요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던 다 빈치는 결국 다시 한 번 보티첼리와 함께 1475년 식당을 개업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무려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에 <최후의 만찬>의 작가와 <비너스의 탄생>의 작가가 있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요리에 ‘정상적인’ 보티첼리가 만류해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요리에 대한 실험을 강행했다.
심황이나 샤프란, 양귀비 꽃 같은 향신료를 적극 활용해보기도 하고, 당시에는 많이 없던 담백한 맛을 사용하기도 하고, 고기와 야채를 적절히 섞어보기도 했다.
특별 메뉴로 개구리 튀김을 선보이기도 했으니 비범한 천재의 식탁은 르네상스 시대 그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메뉴들 뿐이었다.
때문에 식당은 3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지만 예술에 대한 재해석과 요리에 대한 열정, 천재적인 발명가 기질 덕분에 그는 다양한 요리용 발명도 멈추지 않았다. 후추 그라인더, 달걀 슬라이서, 마늘 다지기, 코르크 따개 등 주방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바로 발명을 통해 해결했다.
음식은 인간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인간에 대한 호기심의 이해였다. 때문에 그는 매일 섭취해야 하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한 단계 더 상승시켜주는 예술을 인간이 살아가는 필수 조건인 요리에 접목하며 탐구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였다. 결국 그는 음식과 예술, 발명이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로써 다르지 않다는 점을 요리에 대한 열정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모네 - 음식은 예술의 원천
1874년, 파리의 앵데팡당 전(독립 미술가 미술 전람회).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이번에 전시된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빛의 변화에만 주목해 인상만 남기고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가벼운 그림들뿐이었다. 그는 르아브르 항구를 그린 한 작품 앞에서 결국 비판을 쏟아 내버렸다. 그리고 인상만 주고 사라지는 인상주의자들이라고 말하며 떠났다.
그가 이렇게 비난을 쏟아낸 전시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만들어 낸 인상파의 시작이었고, 그가 비판한 작품은 인상주의의 아버지인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였다. 빛은 곧 색채라는 원칙을 하나의 화풍으로 만들어 인상파의 선구자가 된 모네는 같은 그림이더라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색채에 주목했다. 태양 빛의 화려한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루앙 대성당>은 매 시간대 빛으로 변화하는 모습의 성당을 지속적으로 그려 마치 현대 팝아트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아무래도 모네의 대표작은 <수련>이다.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매일 빛을 연구하며 만들어 낸 색채의 예술이다. 사실 이곳에서 화려한 건 그의 그림뿐만이 아니다.
화려한 저택에 있는 식탁 역시 당대에 화려하기로 소문이 났다. 11시가량 종이 두 번 울리면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여든다. 풍성한 식탁 위에는 빛의 마술사가 만들어 낸 그림만큼 화려하고 다양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미식가이자 탐미가인 모네는 그가 먹은 음식들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기록해 두었다. 토마토 수프, 버섯 그라탕 같은 음식부터 치킨 샤쉬르, 사슴고기, 랍스터 같은 현대에도 쉽게 먹기 힘든 화려한 프랑스 요리가 식탁 위에 펼쳐졌다. 치즈 수플레, 케이크, 딸기 무스, 마들렌 등 다양한 디저트까지 올라오면 호화롭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모네의 식탁이 완성된다.
노란색 색채가 뚜렷한 식당의 인테리어는 그의 예술적 사상이 듬뿍 묻어 있다. 신선하면서 입맛이 도는 음식들 역시 화려한 색을 자랑하며 예술가이자 동시에 미식가였던 모네의 미각과 시각이 들어낸 하모니였다. 다양한 음식들은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저택 근처에서 온 신선한 식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밭에서 뽑아온 채소와 직접 기르거나 마을에서 사 온 동물들로 만들어진 덕분이다. 빛의 변화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면, 지베르니의 자연은 식탁에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