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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Aug 25. 2023

고교야구와 낭만

인생을 재밌게 사는 법

어느 날 점심, 그날 화제는 고시엔이었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고시엔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 중 한 명이 고시엔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 고시엔은 생소한 단어일 테고, 야구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단어다. 정식 명칭은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로, 3,000여 개가 넘는 일본 고등학교 야구부의 당해 최고의 팀을 뽑는 야구 대회이다. 지역별 팀의 대표들이 지역 예선을 거쳐 한신 고시엔 야구장 여기까지 도착한다. 지역 예선부터 결승까지 단판 승부로만 이어지는 탓에 실력뿐만 아니라 운도 갖춰야 우승하는 고시엔인지라,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 대표로 선발되어 고시엔 구장을 밟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광이라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고시엔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단연 아다치 미츠루의 <H2> 다. 고시엔 이야기를 일주일 사이 두 번이나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말에 H2를 15년 만에 다시 읽었다. 고시엔을 향해 달리는 청춘 사이에 벌어지는 스포츠 청춘 만화다. 는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그리고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친구 사이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오묘한 사이에 일어나는 첫사랑과 풋사랑의 기억을 선명하게 그려내 유명하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은 바로 고시엔에서 펼쳐지는 낭만이다.

낭만은 사람을 이끈다. 사랑이 불타오른다고 하지만, 사실 사랑은 마음을 녹이고 낭만은 마음에 불을 지피고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을 사로잡게 한다.


프로야구가 이미 있지만 고시엔에 대한 사랑이 있는 건 단순히 고등학생들의 재롱잔치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니다. 낭만 속에 가득 차 있는 열정 때문이다. 성공해야 한다는 열정이 아니라, 어설플지라도 내가 선택한 이상 최고의 노력을 퍼붓는 열정이다. 끝나고 나면 승패와 상관없이 눈물을 쏟는다. 그 눈물에는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나 승리에 대한 기쁨은 담길 순 있어도 후회는 담기지 않는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 실패에 대한 후회는 없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아닌 도전의 결과가 가져다주는 눈물에 각자의 이야기가 심어진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낭만이다.


이런 낭만은 야구 같은 스포츠에만 있지 않다. 성공이 목표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음악에도, 그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에도, 심지어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을 위한 치열한 공부 속에도 낭만은 있다. 한눈팔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후회 없이 노력한다면, 낭만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있던 낭만은 어디에 갔을까. 무언가 확실히 마음을 주고 집중하지도 않고, 열정을 쏟아부으며 사랑할 대상도 사라져 버렸다.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도전은 선택하지 않는다.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탓인가, 이해도 못 하는 일본어를 뒤적여 가며 오늘 있던 고시엔 결승 하이라이트를 찾아보았다. 처음 들어보는 두 팀의 경기는 8 대 2로 끝이 났다. 승자도 울고 패자도 운다. 유니폼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도 없으니,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낭만의 뜨거운 감정이 담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최선을 다한 순간 받는 결과 끝에 만나는 그들의 고교 시절 추억의 한 장이 이렇게 한여름의 끝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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