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와인의 성장
보울 안을 가득 채운 청명한 루비색은 언제나 아름답다. 잔을 두세 번 돌리면 슬그머니 올라오는 향기 속에는 다양한 과일 향이 숨어 있다. 혹은 태양을 닮아 은은한 노란 빛을 내뿜는 스파클링 와인 속에 보글대는 탄산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별을 마신다.’라는 말처럼 톡 쏘는 기포 속에 숨어있는 오묘한 향과 맛이 있다. 부드럽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포도의 기억을 맛보면 태양이 내리쬐는 프랑스의 모습이 보이는 기분이다.
와인 한 잔에 담긴 스토리는 그 속에 담긴 맛과 향만큼 풍부하다. 가성비 좋은 와인이든, 오랜만에 기분 내서 마시는 와인이든 와인에 따라 색다른 맛과 향이 가득하다. 이 매력 덕분에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사랑하고, 그보다 더 다양한 와인들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병당 천만 원은 우습게 느껴진다는 로마네 콩티, 샴페인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돔페리뇽. 와인에 취미가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과연 어떤 향과 맛이 있을까. 그리고 와인 한 병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비싼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명품 와인의 역사와 시장의 성장
현재 유명한 와인과 와이너리는 이미 중세 시대부터 유명했던 역사가 있다. 귀족과 왕족을 위해 만들어진 품질 좋은 와인이 유럽 곳곳에서 소비되었다. 특히 풍부한 일조량과 완벽한 바람, 기온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을 가진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스페인의 라 리오하의 와인은 그 향과 맛이 깊고 풍부해 인기가 있었다. 특히 오랜 전통을 지키며 만들어 온 자신들만의 와인 생산 기술은 대를 이어 내려왔으며 꾸준한 품질 향상을 위해 발전해 왔다.
자연이 만들어 낸 완벽한 환경, 깊은 역사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집념의 기술이 합쳐진 명품 와인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급격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고 급격한 산업화가 성공하면서 전 세계적인 소득 수준이 상승하자 고급 와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국제 무역의 증가로 와인이 이제는 유럽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더불어 운송 수단의 발달로 안전하게 와인이 이동하게 되었다. 더 이상 와인은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미국,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식탁 위의 보석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수입되는 과정에서 더 풍부한 맛과 향을 지닌 명품 와인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상승했다.
수요는 꾸준히 상승하였으나 역사 깊은 명품 와이러니에서는 수요에 맞는 대량 생산을 거부했다. 로마네 콩티나 샤토 디켐 같은 최고급 와인은 좋은 포도 작황이 나왔을 때, 전통의 기법을 유지하고, 소량 생산으로 만들어 냈다. 와인 한 병에 그들의 최고의 가치를 담아내었고 덕분에 지금도 우아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왜 로마네 콩티, 돔페리뇽일까?
완벽한 루비색을 자랑하는 투명한 모습, 포도밭 언덕이 모두 꽃으로 뒤덮여 있다 과일밭으로 바뀌었다가 또다시 궁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복합적인 맛과 향, 우아한 바디감에 저절로 눈이 감기는 순간.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최고의 모습으로 담긴 완벽한 조화만이 로마네 콩티를 설명할 수 있다.
로마네 콩티의 고향은 프랑스의 부르고뉴다. 알프스산맥 뒤쪽의 프랑스 내륙 지방에 위치한 부르고뉴는 바다와 가까운 다른 포도 산지와 다르게 매년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높은 고지대 사이 움푹 들어간 분지 비슷한 지형 환경 덕분에 언덕이 많고 일조량이 풍부해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건조한 여름 내리쬐는 태양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포도가 영글어 간다.
이곳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의 대표 레드 품종이다. 세계 각국에 피노 누아가 자라지만, 이곳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가 최상품으로 손꼽힌다. 피노 누아로 만들어지는 와인들은 섬세한 벨벳 같은 느낌의 우아한 맛과 체리나 딸기, 혹은 산딸기 같은 향을 선사한다.
로마네 콩티는 이런 최고의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최고의 품종 포도를 겨우 1.85ha의 밭에서 기른다. 깊은 역사를 지닌 와인이 물류가 발전한 현대에도 과거와 비슷한 정도의 양조를 유지하니 로마네 콩티의 값은 천정부지로 솟아가고, 지금의 명성을 만들어 냈다. 다른 곳으로 피노 누아를 가지고 가서 경작해도 비슷한 향과 맛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 만들어도 로마네 콩티 밭에서 만들어진 품종, 역사 깊은 제조법을 복제할 수는 없다. 한 잔 속에 담긴 완벽한 황금 비율의 균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와인은 오직 로마네 콩티 뿐이다.
은은한 훈제 향과 약간의 염도가 느껴지는 독특한 맛이 점차 과일의 모습으로 바뀌고, 입 안의 미각 세포를 깨우는 상큼함, 바로 돔페리뇽이다. 돔페리뇽은 샴페인이다. 일상적으로는 샴페인이라는 상품이 유명한 탓에 단순히 기포가 많은 화이트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돔페리뇽처럼 샹파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이 샹파뉴 지역은 부르고뉴보다 더 북쪽에 있다. 사실상 와인을 생산하는 마지막 라인이다. 그런 덕분에 서늘한 기후를 유지할 수 있고, 상큼한 과일 향의 포도가 생산된다. 또한 넓게 펼쳐진 석회질의 토양 역시 포도 생산에 큰 영향을 준다. 석회질은 배수성이 좋고 흙 안에 물을 머금을 수 있어 나무의 뿌리가 깊게 자라며 흙과 비, 자연이 주는 다양한 미네랄을 포도가 듬뿍 머금을 수 있다. 거기에 탄산칼슘이 적정 pH 농도를 유지해 주며 포도의 산미가 뚜렷해진다. 산뜻한 샴페인을 만들기 최고의 지역인 셈이다.
돔페리뇽이 유명해진 이유는 단순히 좋은 와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는 아쉽게도 매해 같은 양의 수확이 불가능하다. 서늘한 기후 탓에 작황이 불안정하다. 때문에 확실한 품질의 포도가 일정 이상 수확되어야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데, 1921년 생산 이후 42번 정도만 생산되었으니 희소성이 인정받았다.
샴페인을 위한 최고의 포도와 이런 희소성을 통해 돔페리뇽은 자신들의 환상적인 맛과 향을 가진 샴페인을 세계적인 수준의 와인으로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