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Feb 01. 2023

책장 한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취미들

몰입하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MBTI 테스트를 하기 전부터 나는 내가 J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정리하기 전 카오스 상태에 놓인 현실이 차근히 풀어지면서 계획이 되거나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여행 계획이나 일정, 스터디 플랜, 하다못해 서랍장까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하나씩 완성되어 가면 뿌듯했다. 나름의 체계를 머릿속으로 구상해두고 그 체계를 맞춰가며 규칙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상황을 좋아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 못하거나 남이 가는 여행일지라도 계획을 짜는 것이 즐겁다. 내 손으로 만드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내 손으로 완성되는 세계라는 느낌을 준다.


집에 있는 책장 역시 내 손으로 정리된 하나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이 사고 가장 많이 읽는 에세이 장르인 만큼 두 칸을 차지한다. 직업의 특징이 강한 에세이부터 산문에 가까운 에세이 순서로 나열되어 있고, 그 밑에는 여행 에세이가 한가득이다. 두 칸을 넘어 이제 세 칸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그 옆 칸은 소설이다. 민주화 이전 한국 소설, 2000년대 이후 한국 소설, 그리고 해외 고전 소설과 해외 현대 소설이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나열되어 있다. 이후 사회학, 심리학, 과학, 역사를 지나 삼국지나 해리 포터 같은 시리즈를 지나면 마지막에는 취미 칸으로 책장이 끝난다.


한동안 취미 칸의 정체가 애매했다. 오래전 즐기던 취미들이다. 지금은 더 이상 하지 않는 취미라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즐길 거리가 생기면 그에 관한 책을 먼저 샀다. 아직도 책장에 있는 책 중 하나는 야구와 관련된 책이었다. 야구를 하는 방법에 관한 책부터, 야구 선수들의 자서전, 심지어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하던 해 출간된 사진첩까지 있다. 이제는 야구를 할 친구들도 없고, 삼성 라이온즈의 부진 때문에 울화통이 터져 야구를 보지도 않지만, 아직 책들은 남아 있다.

 

야구 서적들 옆에는 타란툴라에 관한 책들이 놓여 있다. 중학생 때 인터넷에서 본 타란툴라의 오묘한 털 색깔에 빠졌었는데, 키우기 위한 정보가 부족해 원서까지 구입했었다. 반도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타란툴라에 관련된 책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했다. 꽤 오래 키웠지만 안타깝게도 수명이 다해 죽고 말았다. 정성껏 기르고 후회 없이 보내준 다음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 앞에는 소설 기법에 관한 책들도 아직 남아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소설보다는 비소설 책을 더 많이 읽다 보니 소설의 재료가 부족했다. 막상 도입도 쓰지 못하고 개요만 여러 개 쓰다가 포기했지만 그래도 나름 하는 동안에는 진지했다. 소설과 더불어 영화 제작에 관한 도서들도 남아 있었다. 20대 절반을 영화 제작에 빠져 살았으니 아직 남아 있다.




상기한 취미들과 작별하는 순간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새 그 열정과 사랑이 희미해졌고 서서히 머릿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작아졌다. 사실 이 책들에 대한 관심도, 취미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으니 언제 버려도 상관이 없다. 최근 들어 두 번이나 이사했을 때 중고 거래로 팔았다면 책장에 새로운 칸도 생기고 돈도 생기니 더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책들은 버리지 않았다. 몇 번의 이사에도 취미 칸의 책들은 항상 살아남았다.


무언가 열렬히 빠져 있던 순간들의 기억들인 덕분이다. 정리를 통해 책장의 세계가 하나의 규칙을 가지며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당시의 열렬히 사랑하던 취미들은 지금의 내가 나로 완성되기 위한 조각들이었다. 예컨대, 그때의 내가 야구라는 종목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스포츠라는 세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타란툴라를 사랑하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 작은 생명체라도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소설,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물들였다. 그리고 이런 작은 추억들은 나라는 존재의 조각들이 흩어졌을 때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의 기억들이다.


돌이켜보면 한때 집중하다가 무언가 포기하거나 끝을 내버리면 ‘말짱 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분야, 공부라든지 아니면 사랑이라든지 시작했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을 낸 것들은 부끄러운 치부로 남게 되었다. 시작했다면 끝을 봐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서 그럴까. 나도 모르게 끝을 내지 못한 것들은 사실 시작하지 않았어야 시간도 돈도 감정도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때의 몰입이, 그때의 감정이, 그때의 추억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끝맺지 못한 후회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오늘 느낀 추억은 훗날 휘발되어 버릴지라도, 오늘의 기억이 내일의 기억이 되고 내일의 기억이 다시 모레의 기억이 되어 겹겹이 쌓여 가듯이 모든 기억은 연결된다. 무언가 푹 빠져 있던 약간은 철없고, 어리던 내가 그 시간을 지나와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낯설게 다가오는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