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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Aug 28. 2022

낯설게 다가오는 서울

여행지처럼 새롭게 하루를 살기

벌써 수 십 년을 만난 가을인데 아직도 다가올 때는 갑작스럽다. 분명 지난주만 하더라도 뜨거운 햇살이 그늘까지 넘보는 더위를 넘봤는데, 이번 주엔 낮에도 그늘은 선선했다. 처서가 지나자마자 바로 가을이 찾아온 듯하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절기는 그 어떤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것 같다. 하늘 역시 가을을 닮아 너무나 맑고 높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에는 오직 아직 뜨겁고 싶은 태양뿐이었다. 한동안 비가 그치지 않아 이렇게 맑은 하늘을 만나기 어려웠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태양이 반가웠다.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잠실 롯데월드 몰을 다녀왔다.


잠실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많은 듯했다. 날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주말이라 그런 건지, 혹은 둘 다 때문인지 롯데월드 몰 안에 사람들은 넘쳐났다. 지하상가부터 쇼핑몰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피곤해 사람 넘치는 주말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걷다가 조금 쉬고 싶어 타워와 몰을 이어주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구름다리 앞에 소파에 앉으려는데, 창문 밖으로 펼쳐진 공원과 석촌호수까지의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큰 건물 사이에 펼쳐진 푸른 나무들은 태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고, 저 멀리 초록색 호수가 마치 숲에 둘러 쌓인 듯 있었다. 특히 며칠 쏟아진 비 덕분에 멀리 있는 산까지 또렷이 보였다.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마치 센트럴 파크나 홍콩에서 볼 법한 풍경을 서울 한 복판에서 보게 되니 낯설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 역시 이 멋진 풍경에 눈을 빼앗긴 듯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뒤로 물러나 주었다. 이제 보니 외국인이었다. 주변에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들의 시선에서 보는 이 풍경은 무슨 기분일까.




불현듯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어느 나라를 가던 도시는 항상 바쁘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발 바쁘게 돌아다니며 똑같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한다. 빠르게 걷던 그들은 익숙한 거리의 풍경보다 업무를 위한 휴대폰이나 다음 버스 시간표에 더욱 집중한다. 하지만 낯선 풍경 속으로 들어간 나는 그들이 보지 않는 다른 것에 집중한다. 한국과 다른 하늘, 색다른 건물들, 심지어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말소리에도 집중한다. 서로 보는 시야가 다르니 거리의 풍경도 다르게 다가온다.


거꾸로 내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한국의 풍경들도 그들에겐 모든 것이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여행을 온 외국인처럼 이 풍경을 다시 바라봤다. 이곳은 홍콩이다, 이곳은 미국이다 하면서 스스로 최면에 빠져 보았다.


즐겁다. 거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평범하게 지나가던 조각상 역시 거장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멋진 여행지에서 완벽한 날씨와 함께하는 날이다. 스쳐 지나가던 모든 순간이 새롭다.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이 다가온다.


지루하게 보내며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던 내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 주었다. 굳이 여행만 바라면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도시를 지루하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하다못해 작은 골목 조차도 자세히 바라보면 색다른 것들이 많다. 길에 펴 있는 작은 민들레, 앞마당에서 살짝 삐져나온 나뭇잎의 흔들림, 붉은 벽돌의 패턴 모두 놓치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조금씩 삶 속에 녹이면 지루한 일상이 여행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설레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항상 여행만 기다리던 삶에서 벗어나 지금을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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