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의 일기
12월 24일 12시 49분 비행기, 델리행
민폐가 많은 여행이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기분이 싫어 인도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인도 다녀오면 통장 잔고도 바닥이고,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지만, 일단은 떠난다. 비행기에 타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었는데 아직은 그대로다. 가서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오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사람 머리에 단추가 있어 한 번에 아픈 기억을 다 지우고 쉽게 긍정적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항공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다른 비행기보다 비쌌지만 오늘 출발하는 비행기들은 환승에 출발 도착 시간대도 늦어 그냥 이 비행기를 탔다. 확실히 생각보다 넓다. 그동안 수많은 비행기를 탔어도 이렇게 쾌적하긴 오랜만이다.
인도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적어 복도 쪽 자리인데 옆에 두 칸이나 사람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창가 자리에 앉을 걸 그랬나 보다. 비행기는 이제 출발한다. 근데 갑자기 휘발유 냄새가 난다. 설마 대한항공인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무것도 못 먹고 말라리야 약만 먹은 채 집을 떠났다. 천천히 걸어가니 집 앞에 공항버스가 벌써 도착했다. 버스에서 자다가 공항에 도착했고, 대한항공은 제2 터미널로 와야 해서 사람이 없었다. 꽤 쾌적하게 공항을 즐기다가 뭐라도 먹어야지 싶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태국 음식이 눈에 띄었다. 이름 어려운 음식 하나 먹으면서 위장을 이제 해외로 맞춰두기 위해 노력했다.
먹고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먼저 샀다. 그런데 인도 담배 면세가 한 보루인지 100개비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괜히 세금 내라고 하면 여행 초반부터 머리 아프고 기분 상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은 다른 걱정이 없지만 딱 두 개가 걱정된다. 유심이 개통이 안되면 어쩌지 와 담배 면세 어쩌지 이 두 개다. 한 참을 찾아보다가 포기했다. 일단 도착하면 생각하련다.
그래도 비행기에 올라타니 기분은 좋다. 드디어 떠난다. 대한항공인데도 기내 모니터 안에 볼 게 없다. 차라리 케세이 퍼시픽이 훨씬 많다.
15시 04분 비행기
자리가 넉넉해서 왼쪽으로 옮겨 앉았다. 6시간 더 가야 한다. 생각보다 멀다. 한숨 더 자야지. 넷플릭스에 받아온 다큐멘터리 하나와 드라마 셜록을 봤다.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니 기내식이 나왔다. 대한항공이라 기대했는데 역시나 비빔밥, 해산물, 인도식 채식 음식 이렇게 메뉴가 세 가지였다.
비빔밥은 안 당기고 인도식은 앞으로 계속 먹을 테니 패스. 해산물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그저 그렇다. 코다리 찐 것 같은 것과 죽순, 콩 그리고 볶음밥이 마치 간장 같은 소스와 함께 나왔는데 생선이 너무 퍽퍽했다. 그냥 비빔밥 시킬걸. 확실히 다른 곳보다 양도 적었다. 요거트 같은 것도 없고. 뭔가 부실하다. 사람이 적게 타서 그런가. 대한항공 기대했는데... 비싸게 주고 탔을 때는 기내식의 이유도 있었는데...
게 눈 감춘 듯이 먹고 나니 와인도 서빙해 줬다. 먹고 나니까 졸리다. 뒷사람은 컵라면 먹던데 나도 하나 주문할까.
17시 21분 비행기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간다. 예전에 여행할 때는 그 긴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을까. 러시아 갈 때는 이것보다 더 걸리기도 했었고, 유럽에서 버스 탈 때는 23시간 타기도 했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아직도 5시간가량 더 남았다. 입 벌리고 한 시간 정도 잤더니 입이 말랐다. 물 한잔 마시고 커피 한 잔 마셨다. 다음 기내식은 언제일까. 언제 내릴 수 있을까.
17시 57분 (델리 시간)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기내식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냥 샌드위치가 나왔다. 기내식이 러시아 갈 때 탔던 시베리아 항공보다 못하네. 그래도 37분 후면 델리 도착이다. 배고프고 찌뿌둥하다. 밖은 14도라니 겨울치고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