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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익숙한 듯 낯선 인도의 모습

1월 6일 18시 20분, 델리 쇼핑몰

1월 6일 18시 20분, 델리 쇼핑몰

우버는 호텔에 정말 금방 도착했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체크인을 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인도의 모든 호텔에서는 영어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마 우리가 온 곳이 관광객이 오기보다는 비즈니스 맨이 주로 오는 지역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도 IT 산업의 중심지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판교랄까. 판교라고 하니 이해가 된다. 아무튼 영어를 못하니 한 20분 정도 씨름을 했다. 체크인하려고 온 사람이니 그건 알아듣지만, 여권 주고, 지금 체크인되고 안되고, 공항 내일 가려면 어떻게 가고 이런 게 안되었다. 큰일 날 뻔. 와이파이도 숙소 와이파이가 아니라 번호 입력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호텔 직원 번호를 입력해 사용했다. 휴대폰이 맛이 가서 자꾸 꺼지는데, 한 번 꺼질 때마다 내려가서 와이파이 다시 잡아달라고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하고 샤워를 했다. 짐은 엉망으로 던져두고 우선 마지막 여행인 구르가온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났다면 이제 인도의 발전하는 현대를 볼 차례다. 구르가온 신도시는 IT의 성지답게 난개발이 아닌 계획 개발이 진행되었다. 돈 많은 업계인들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쇼핑몰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중 앰비언스 몰이라 불리는 곳으로 갔다. 호텔 주변은 자이푸르와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는데, 쇼핑몰 주변은 정말 서울이나 판교와 비슷했다. 건물 양식이 콘크리트, 유리 건물이라 그런지 익숙하다. 도로도 널찍하고 큰 건물도 많다. 쇼핑몰 주변에는 별거 없이 덩그러니 쇼핑몰만 있는데,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비슷했다. 차량들은 쇼핑몰 들어가기 전에 트렁크 검사를 받고, 사람들은 들어가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해야 했다. 아무래도 근래에 종교 갈등으로 테러가 몇 번 일어났어서 그런가 철저하게 조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마어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놀라웠다. 쇼핑몰이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 00년대에 지어진 건물처럼 생겼었는데 안은 나름 깔끔했다. 예전에 뉴코아 백화점에 갔을 때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넓고 사람도 많지 않고 어디선가 깔끔한 향기도 풍겼다. 자라, H&M 등 유명한 메이커들도 들어와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아웃렛 같아 보였다. 가격도 한국과 비슷했다. 나에게는 비쌌다. 그래도 물가 저렴한 인도니까 메이커도 좀 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니스프리가 한쪽에 있는 거 빼고는 신기한 모습은 없었다. 배가 고파서 4층에 있는 맥도날드로 갔다. 인도 맥도날드는 쇠고기 패티가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확인해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쇠고기 패티가 들어간 음식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메뉴판 속 사진에도 치킨버거만 가득했다. 빅맥은 없었고 대신 빅밀이라고 되어 있는 표시 밑에 마하자라 맥이 있었다. 마하자라 맥 하나와 한국에서 있었지만 단종된 필레 오 피시를 주문했다. 익숙한 맥도날드에서 느끼는 신선한 만남이라. 마하자라 맥 안에는 감자 고로켓 같은 게 들어있는 듯했다. 크기는 한국의 다른 햄버거에 비해 훨씬 큼직해 좋았다. 한국 햄버거들은 왜 다들 작을까. 작아지다가 이제 고등학교 매점 햄버거 크기까지 줄어든 기분이다. 마하자라 맥에 고기처럼 생긴 패티를 물었는데 낯선 맛이 느껴지니 독특해 신기했다. 와퍼를 먹는 듯이 불맛이 느껴졌다. 매콤한 소스덕에 느끼하지도 않다. 신기하게 맛있다. 필레 오 피시는 생전 처음 먹는데 익숙한 느낌이다. 생선가스 맛이다.



밥 먹고 천천히 돌아다니다 영화나 하나 볼까 하는 말이 나왔다. 인도에서 영화라니,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했다. 사실 바라나시에서도 영화를 볼까 했는데 거긴 너무 현실이 영화 같아서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볼만하지 않을까 했다. 영화값은 200루피인데, 팝콘과 커피가 260 루피였다. 


영화관이 비싼 동네에 있고 대낮이라 그런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관이 아니었다. 단정한 차림의 몇몇 부부들이 들어오고, 조용히 착석해 영화를 기다렸다. 조금 아쉬웠다. 하긴 우리가 선택한 영화도 조용하고 잔잔한 할리우드 영화였으니 기대하긴 어려웠지. 영화 자체는 그리 재밌지 않았지만 영화관을 처음 온 것이 신기했다. 영화 중간에 광고가 나오더니 쉬는 시간이 생겼고, 낯선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딱 화장실 가고 싶은 타이밍에 인터미션이 있으니 좋긴 했다.



영화를 보고 내려와서 뭐 할까 고민했는데 쇼핑몰 조금 돌아다니다가 난 카페에서 쉬고 친구는 더 구경하러 다녔다. 와이파이가 안 잡혀 헤어지면 영영 못 찾으니 카페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돌아가야 하네. 긴 시간 인도에 있으며 즐길 거 다 즐겼다. 처음 인도 왔던 때가 생각난다. 미세먼지에, 사기에, 비위생적인 모습에 실망했었지. 그때는 인도에 있는 게 한국에 있기 싫어서 있었다면, 이제는 인도에 있는 게 인도의 이런 다양한 즐거운 모습에 떠나기 싫어졌다. 첫 만남이 최악인 상대를 짝사랑하는 기분이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인 게 이런 이유 때문인가?


22시 11분 구르가온 호텔

인도에서 하루가 끝이 났다. 카페에서 좀 쉬다가 상민이가 구경 다 하고 와서 만났다. 만나서 지하 1층에 슈퍼가 있다길래 기념품 살게 있나 싶어 가 보았다. 기념품을 지금까지 하나도 사지 못했다. 사실 예전에 뉴질랜드 첫 여행에서 기념품으로만 70만 원을 써서 이젠 굳이 다들 챙기지 말고 딱 가족이랑 동네 친구만 사줘야지 마음먹었다. 유럽에서도 그래서 동생 거만 좀 많이 사고 거의 안 샀지. 그래서 인도에서도 안 샀는데 그래도 너무 안 샀다. 괜히 비싸게 살까 걱정도 되고, 품질도 걱정되어서 공항 가서 사야지 하고 미뤘는데 이젠 사야 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살게 또 없다.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지역이라 그런지 기념품은 없고, 옷부터 식료품까지 딱 한국 대형마트처럼 되어 있었다. 옷은 비싸고, 장난감은 좀 저렴했다. 한 바퀴 둘러봐도 살게 없어서 그냥 라면만 조금 샀다. 인도 라면은 색다르니까. 비닐봉지 말고 마로 짠 듯한 직물 봉지에 넣어주었다. 환경 생각하면 확실히 좋긴 하다. 비닐보다 금방 썩는 이런 직물 봉지. 한국에서 사업해 볼까.



인도에서 마지막 저녁은 좀 거하게 먹어보려 했다. 바비큐 어쩌고 되어 있는 곳이라 설마 고기가 있나 싶어서 들어갔다. 돼지고기라도 좋으니 닭 말고 네발 달린 고기가 먹고 싶었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는데 매니저부터 높아 보이는 사람까지 영어를 죄다 못했다. 그래도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주문했는데, 무한리필 고기 뷔페였다. 샐러드 바도 있었는데 신선한 채소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난과 고기가 도착했고, 꼬치에 꿰어진 고기들이 불 위에서 맛있게 익어갔다.



기대했던 고기는 없지만 닭꼬치, 새우, 생선이 계속 나오고 중간중간 닭날개와 양고기 미트볼, 구운 옥수수가 나왔다. 특히 대구 같아 보이는 생선이 정말 담백하고 좋았다. 살이 꽉 차 있어 잘 부서지지 않고 입 안에서 녹는 게 신기했다. 한 시간 정도 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불렀다. 계산하니 여태 인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비싼 800 루피였다. 우리 돈 13,000원이다. 뷔페에 무한리필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좀 싸다. 이 쇼핑몰 자체가 가격대가 있는데 이 정도면 저렴하지.


밥도 다 먹었으니 디저트도 뷔페처럼 되어 있어 몇 개 가져다 먹었다. 타르트는 맛있었고, 아이스크림은 치약에 고수를 넣은 맛이었다. 기괴한 맛조합이다. 생크림은 입가심 허브 맛이 너무 강했고, 과일은 두리안인지 똥 맛이 났다. 맛있게 먹고 마지막에 입맛을 버렸다. 계산하고 나와 천천히 주변 푸드코트를 구경했다. 저렴한 대신 공항 푸드코트와 비슷해 보였다. 



이제 슬슬 가야 해 내려갔다. 내려가는데 서점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책 냄새는 어딜 가나 같다. 마음 편안해진 냄새와 낯선 문자 사이의 기묘한 기분이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큼직하게 있어 움찔했는데 옆에 모디 자서전, 그리고 영화 <세 얼간이>로 유명한 아미르 칸의 자서전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에서도 여전히 <세 얼간이>가 인기가 많은지 대본집이 있었다. 신기해서 하나 사고 싶지만 참았다. 이제 남은 돈이 얼마 없으니 선물 사면 끝이다.


우버 불러서 호텔로 오려했는데 역시나 영어를 못했다. 관광도시보다 영어를 더 못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쯤 되니 오히려 신기하다. 주변에 편의점 있으면 잠시 들려달라고 했는데 못 들리고 바로 왔다. 결국 마침내 숙소로 들어와 씻고 쉬면서 일기를 쓰고 있다. 내일은 4시간 정도 뜨는데 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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