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에서 생일 맞기

에스토니아 여행기 -10

by 박희성

성인이 된 이후 생일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시험기간과 겹쳐 친구들 뿐만 아니라 저도 공부하느라 바쁘게 밤 새던 날이 저에겐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일이라는 말 자체는 듣기만 해도 마음 속에서 두근거리는 단어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오늘 생일이냐 하는 말도 있으니까요.

생일이라는 단어를 들어서 두근거리는건 저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요.


해외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많은 생일 축하 카톡과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니 두근거렸습니다.

그래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특별한 날을 무엇으로 기념할까 생각하다 맥주 한 잔이 생각났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솔직히 무서워서 술을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오랫만에 낮에 맥주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건 대낮에 술마시는 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전망대에서 서둘러 내려와 광장으로 향합니다.

1524136229273.jpg?type=w773

푸른 하늘 아래에 시원하고 깔끔한 에스토니아 맥주 한잔을 하면서 광합성을 하니 온 몸이 나른해집니다.

아침내내 바쁘게 관광하던 피로가 한번에 녹아 없어집니다.

항구에서 온 갈매기가 천천히 활강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감기며 일기 쓰던 펜을 놓칠듯 말듯 잠이 듭니다.

정말 평화로운 날입니다.

여행에서 느끼는 모든 긴장감이 사라집니다.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제 몸이 이런식으로 풀리니 위험함은 생각치도 않고 도시에 녹아듭니다.

1524137671548.jpg?type=w773

잠이 올듯한 기분을 즐기고 있는데 광장 저 멀리가 소란합니다.

따가운 햇빛 탓에 눈을 찌푸리고 바라보니 저 멀리서부터 몇몇 어린 학생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다가옵니다.

열 명 정도의 무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손에 손을 잡고 백여명의 친구들이 광장을 채웁니다.

다같이 강강술래하듯 손잡고 거대한 이곳을 웃음으로 가득 메웁니다.

마치 제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 같습니다.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하며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주변에 있는 학교에서 하는 축제라고 합니다.

바로 제 앞으로 온 친구들은 저에게 반가운 인사를 해 주기도 합니다.

잠시 후 모든 학생들이 빠른 속도로 옆으로 돕니다.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될만큼 빠르게 돌더니 반대쪽으로 빠져 나갑니다.

놀라운 한편의 그림을 본 듯 가슴이 뜁니다.

맥주 두 잔으로 취한것 같습니다.

행복한 생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갈매기도 멈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