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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소심한 서러움에 관하여

폴란드 여행기 -8

by 박희성

김치찌개를 먹고 나니 이제 시간과 위치가 애매합니다. 구시가지까지 돌아가 다시 관광하기에는 너무 멀고, 버스 정류장에 가면 할 수 있는것이 없고, 여기에 있자니 언제까지 있을지 모릅니다. 하는 수 없이 바르샤바 중앙역으로 걸어가 맡겨 놓은 캐리어를 받고 역 안의 카페에 앉았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다니니 발은 쑤시고, 버스에서 선잠을 잔 탓에 피곤합니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침대에 눕고 싶지만 오늘 밤 버스로 곧장 체코의 프라하로 가야 하는 탓에 쉬지 못합니다. 방전된 몸을 이끌고 스타벅스 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만 쪽쪽 빨아 마십니다. 눈두덩이가 무거워지고 허벅지가 아픕니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릅니다. 저는 주로 걸어다니는 여행을 하는데 휴대폰에 기록되는 하루 이동거리가 평균 2~30km가 나옵니다.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은 새로운 풍경이 신기해서 걸어다니는 것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숨어있습니다. 여행은 실패도 새로운 경험이지만, 유독 대중교통은 타기 두렵습니다. 지하철 방향이 다르면 어쩌지, 버스 방향이 다르면 어쩌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는데 표를 잘못산 것이라 벌금을 물면 어쩌지 등 대중교통 앞에서는 수 많은 의문과 의심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차라리 걸어다니자라고 자기 위안을 삼습니다. 이런 마음이 습관처럼 자리잡으니 어느 나라를 가도 걸어다니게 되었고, 오늘처럼 체력이 모두 방전이 되기 쉽상입니다. 소심한 마음이 고쳐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먼 길입니다.


스타벅스에서 이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역시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힘든 날이면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정만 가면 되니 지하철이 당연한 선택지이지만, 위에서 말한 두려움 때문에 걸어갈까 고민됩니다. 하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몸은 따라주지 않습니다. 결국 큰 마음 먹고 지하철을 타러 갔습니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며 두 세번 확인 후, 지하철 직원에게 다시한번 확인 받습니다. 폴란드어만 하시는 직원분과 소통이 되지 않으니 직원은 지나가던 사람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흔쾌히 가이드를 맡은 지나가던 청년은 저를 데리고 지하철로 들어가 내릴 때 어떻게 내리는지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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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버스정류장에 왔는데 아직도 시간이 한시간이나 남았습니다. 밤 11시가 되니 제가 앉아있는 넓은 대합실의 사람들을 경비원이 한쪽으로 몰아냅니다. 넓은 대합실은 관리하기 힘드니 좁은 곳으로 사람들을 몰아 넣어 관리하는 듯 합니다. 왜 버스는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일까요. 점점 초조해져 손톱만 물어뜯고 피곤함때문에 머리는 더욱 아파집니다.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가 없으니 이렇게나 힘이 듭니다. 집이 그리워지는 밤이 깊어갈무렵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가 짐을 싵고 사람들이 다 타기 전에 잠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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