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4
얀 후스 동상까지 보고나니 이제 뭘 해야하나 고민됩니다. 볼 만한 것은 다 본 기분이라 큰 감흥이 없습니다. 그래도 천문 시계가 프라하에서 유명하다고 하니 보러 가봤습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명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천문 시계탑입니다. 시계탑의 시계는 두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에 있는 시계는 열두 별자리와 농작에 관해 그림으로 그려진 시계로 농민들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시계입니다. 농사에 관한 그림들을 보면 글을 읽지 못하는 농민들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계절인지 깨닫는다고 합니다. 위에 있는 시계는 천동설과 지동설을 이용해 시분초, 일년월을 넘어 동지와 하지까지 알려주는 고정밀 시계입니다. 주로 학자들이나 귀족들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엄청난 시계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공사중이라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첨탑 위를 올라가는 길은 열렸다고 하니 올라가 봅니다. 언제나 높은 곳은 기분이 좋습니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숨이 차지만 올라갈수록 바뀌는 모습에 신기해서 힘든 줄 모릅니다. 시계의 뒷부분도 살짝 볼 수 있는데 마치 기계 부품안으로 들어와 있는 듯 합니다.
올라가서 뻥 뚫린 공간을 바라보면 항상 자유로운 기분입니다. 오사카에서도, 홍콩에서도, 그리고 여러 동유럽에서도 항상 이런 높은 전망대를 가서 맑은 공기를 듬뿍 마셨습니다. 탈린의 높은 첨탑에서는 아름답게 빛나던 발트해와 귀여운 올드타운을 바라 보았습니다. 바르샤바에서는 뻥 뚫린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보며 반짝거리는 보석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프라하는 여러 복합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저 멀리 프라하 성을 바라보면 정말 보헤미안 왕국에 와 있는 것 같고, 눈 아래 광장을 바라보면 맛있는 음식 앞에 줄 서 프라하 맛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지붕은 모두 통일된 주황색이지만 벽은 알록달록 해 장난감 마을 같습니다.
쌍둥이 틴 성당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봄바람의 따듯한 기운이 코 끝을 간지럽힙니다. 처음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구경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스스로 즐거운 척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억지로 행복해지기 위해 머리 싸매지 않고 이렇게 바람따라 마음따라 걷다보니 기분 좋은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라고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벗어나니 자연스럽게 프라하에 녹아들었습니다.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내가 좋으면 된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