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1순위는 아마 카를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 어느 곳보다 활기가 넘치는 장소입니다. 거울처럼 잔잔한 블타바 강은 다리 아래로 흘러가고 강을 따라 함께 흘러 들어온 바람은 선선하게 콧잔등을 간지럽힙니다. 융단처럼 깔린 푸른 나뭇잎 아래엔 백조들이 평화롭게 졸고 있고 다리 위의 악사들의 음악 소리에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달아오릅니다. 다리를 건너며 고개를 들면 프라하 성이 보입니다. 진짜 디즈니랜드의 공주와 왕자가 춤을 추며 사랑을 나눌 것 같고 그 파티에 초대받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다리를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은 다리 주변의 풍경뿐만이 아닙니다. 아까 들려오던 황홀한 음악을 연주해주는 악사들, 꼭두각시로 꼬마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도 신나게 만드는 광대, 멋진 이 광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다채로운 각자의 색깔로 다리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수많은 커플들이 사랑을 속삭이면 세상 그 어떤 다리보다 멋진 카를교가 완성됩니다.
어디를 바라봐도 커플입니다. 손을 꼭 붙잡고 걷는 커플, 커플티를 맞춰 입은 커플, 그리고 한국인 커플, 또다시 한국인 커플. 하필 프라하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여행지인 탓에 다리 위에서 한국어가 끊이지 않고 들립니다. 차라리 체코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로맨스라면 괜찮지만, 그 어떤 언어보다 선명하게 들리는 사랑의 한국어 탓에 마음이 아픕니다. 잡아 줄 손이 없으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꿋꿋하게 걸어가며 애써 카를교를 빛내 주는 수많은 동상들로 눈을 돌립니다.
서른 개의 성인들의 동상이 다리 양 옆으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카를교에는 모든 동상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상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입니다. 대주교에 대립하던 보헤미아의 왕에 의해 이 장소에서 처형당하고 후에 다리 위의 유일한 청동 동상으로 만들어진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은 소원을 잘 들어주는 용한 동상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소원을 빌기 위해 기다리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왔는지 동상 아래 동판이 맨질맨질합니다.
카를교에서 소원을 비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위 사진처럼 왼손으로는 다리 위의 십자가에 손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동판을 잡고 블타바 강을 바라보며 단 한 가지 소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오른쪽 아래의 사람을 만지며 소원을 다시 한번 빌어야 합니다. 동판의 반질거리는 곳 아무 곳이나 만지면 안 되는 나름 규칙을 지킨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다리입니다.
앞 뒤로 커플들 사이에 껴서 저도 소원을 빌어봅니다. 서로의 사랑을 약속했다는 커플들의 말이 들려오지만 눈물을 참으며 무시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원을 꺼내 보았습니다.
" 신부님, 제발 애인 생기게 해 주세요."
이런 아름다운 곳에 와서 외로움을 생각하는 제 모습이 처량하지만, 오히려 이런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로맨스 가득한 이 다리 위에서 처음으로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