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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체코 여행기 -7

by 박희성

프라하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보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날입니다.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으러 내려왔습니다. 시리얼과 빵이 다양하게 있고 커피도 머신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넓은 자리는 부담스러워서 구석에 쭈그린 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식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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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으로 짜 둔 오늘의 코스를 다시 한 번 인터넷을 켜서 확인합니다. 한국인이라면 응당 사용한다는 네이버를 휴대폰에 켜 두고 시리얼을 먹는데, 앞에 한 분이 와서 영어로 앉아도 되는지 물어봅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조금 비켜주니 한국어로 말을 겁니다.


"한국분이세요?"


한국을 떠난지 2주만에 듣는 한국어입니다. 확실히 한국인이 많이 여행하는 체코로 넘어오니 이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닥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입에서 한국어를 떼는 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일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만에 한국어를 할 기회인데 낯을 가리는 탓에 그릇에 코를 박고 숟가락질만 합니다. 그 사이 아저씨는 다른 한국인 여행가도 이 테이블로 불러 앉힙니다.


다행히 먼저 여행에 대해 말을 꺼내주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행가입니다. 두 분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주제를 편안히 저에게 던져줍니다. 여행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저에게 먼저 말을 꺼내신 분은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시작해 체코까지 오신, 그동안 여행한 국가만 수십국이 되는 베테랑 여행가였습니다. 여행한 나라만 많을 뿐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어 이야기 속으로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빨래를 해야되서 빨랫감을 가지고 나오는데 아침 식사를 함께한 또 다른 형님과 마주쳤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안에 세탁기가 없어 밖으로 나가야하는데 친절히 길을 알려주시며 동행합니다. 세탁기를 돌리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분은 런던에서 시작해 서유럽을 훑고 이곳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번이 한국인을 처음 만난 것인데, 서유럽 쪽을 가면 한국인을 만나기 쉬웠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한국인끼리 삼겹살파티를 한 이야기나 파리에서 같은 게스트 하우스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투어를 했다는 말에 부러움의 눈빛을 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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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셋이 다시 마주쳤습니다. 큰 형님이었던 베테랑 여행가님이 공항가기 전에 함께 마지막 산책을 하자는 제안을 하십니다. 숙소 가까운 곳에 바츨라프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까지 걸어가며 가이드를 해 주십니다. 바츨라프 광장에 대해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는데 맛있는 이야기와 함께 설명해주십니다.


셋이 나란히 걷는 이 바츨라프 광장은 우리의 광화문 광장과 닮은 역사의 중심인 광장입니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인 5.18 민주화 운동과 닮은 프라하의 봄,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이룩한 촛불 시위와 같은 벨벳 혁명, 그리고 기쁜 일이 있으면 모두가 뛰어나와 환호한 일이 모두 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여행을 한다면서 이런 중요한 공간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던 제 무지를 속으로 탓하며 열심히 이야기를 듣습니다. 덕분에 전날 아무런 생각 없이 건넜던 이 횡단보도를 밟는 발에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감사함을 전하는데 끝이 아닙니다. 여행가님은 큰 형으로서 시원한 커피 한 잔과 기타 프라하 여행에 필요한 지하철 표, 그리고 남는 동전 등을 주머니에서 탈탈 털어 넘겨주십니다. 그리고 호탕한 웃음으로 여행을 하면 자신감 있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라는 말씀도 잊지 않고 해주십니다. 여행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단순한 반가움 뿐이었는데 이런 큰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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