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8
프라하의 첫날의 느낌이 좋으니 둘째 날도 역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준비했던 블타바 강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유람선 투어를 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입니다. 카를교 앞으로 가면 수많은 관광 호객꾼들이 즐비합니다. 투어 팸플릿을 보고 있으니 넉살 좋은 호객꾼이 다가옵니다. 마치 10년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다가와 혼을 쏙 빼두고 어느샌가 제 손에는 유람선 티켓이 들려 있습니다.
카를교를 건너 유람선 승차장에 앉아 선선한 강바람을 조용히 맛보고 있으니 금세 배가 도착합니다. 넓고 기다란 보트에 다양한 관광객을 따라 탑승해 한쪽 구석에 앉았습니다. 유속이 느린 블타바 강을 천천히 돌며 강 주변에 있는 명소를 떠먹여 주듯 하는 가이드를 들으니 한결 여유롭고 좋습니다. 푸른 강가의 나무 아래에는 백조 무리가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고, 강 주변의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건물들은 그림 같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코스는 존 레넌의 벽입니다. 화려한 벽을 보며 어디선가 길거리 방랑 가수가 부르는 존 레넌의 노래를 음미하고 있으니 한국어가 들려옵니다.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이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정보를 떠먹여 주는 것이 싫지 않아 옆으로 슬쩍 다가갔습니다. 알고 보니 여행 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팁 투어입니다. 팁 투어는 자유여행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신청하는 한국어로 된 프라하 투어입니다. 다만 다른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자신이 듣고 싶은 만큼 듣고 들은 만큼 투어가 끝나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만큼 팁을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설명에 감탄한 만큼 제공하기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 여행가들도, 넉넉한 인심의 실버 여행가들도 많이 신청하는 투어입니다.
투어 가이드에 따르면 이 벽은 블타바 강과 운하로 둘러 쌓여 카를교의 끝에 있는 캄파 섬에 있는 고요한 수도원의 벽이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은 오직 노래뿐이었습니다. 꿈의 노래 중 가장 사랑받은 곡은 바로 존 레넌의 "Imagine"이었습니다. 반전과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하는 존 레넌의 사상은 체코 젊은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1980년 존 레넌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 벽에 존 레넌을 기리는 메시지와 노래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흰 벽이 가지고 있는 넓은 마음에 사람들은 점차 자유를 갈망하는 속마음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이 벽에 가득 차기 시작하며 체코 정부는 불안한 마음에 벽을 매일 흰색으로 칠하기 시작했지만, 다음날이 되면 다시 이렇게 화려한 메시지를 입은 벽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도원의 벽이기 때문에(현재는 몰타 대사관) 함부로 철거할 수도 없었고, 점차 벽은 유명세를 타며 지금의 전 세계인들이 방문하는 자유의 벽이 되었습니다.
투어까지 마쳤으니 점심을 먹어야겠습니다. 오늘의 점심은 오스트리아의 명물이자 동유럽의 빠질 수 없는 슈니첼입니다. 돈가스와 비슷하지만 레몬을 뿌려 먹는 슈니첼은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음식입니다. 싸구려 입맛이기 때문에 강한 경양식 소스가 없으면 어떻게 돈가스를 먹지 생각하며 주문을 하고 나서 불안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따듯한 튀김 위에 레몬을 살짝 뿌려 먹으니 예상 의외로 맛이 대단합니다. 따듯하고 육즙 가득한 튀김에 레몬의 새콤함이 더해지니 입 안에서 새로운 맛이 뿜어져 나옵니다. 침샘이 멈출 줄 모르고 자꾸 고기를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