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11
그동안 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녔지만, 동화 같은 마을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마을은 아무래도 체스키 크룸로프입니다. 그동안 도착했던 다른 도시들은 미사여구로써의 동화 같은 마을이라면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는 우리나라에도 동화마을로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얕으마한 산으로 둘러 쌓인 작은 마을과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블타바 강, 그리고 이 작은 마을을 관장하는 거대한 성까지, 어느 동화에 나와도 어울리는 동네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오게 된 이유는 단순하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 때문은 아닙니다. 이번 여행을 통 틀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풍경을 보고 지나왔지만 혼자 그 황홀한 기분을 흘러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반 걸려 도착한 체스키 크룸로프의 버스 정류장에 D가 서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마을 근처에 사는 D는 체코에 도착하기 수 일 전부터 저를 위해 도시 투어를 위한 가이드를 스스로 준비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인터넷과 전화로만 연락을 하던 우리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지만 오래된 친구마냥 반가웠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짧은 일정이 아쉬운 D는 빨리 나가도록 저를 재촉합니다. 하늘이 청명한 푸른색에서 태양의 색을 품은 가장 걷기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성벽입니다. 마을을 지키는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순간 마을의 전경이 나타납니다. 색색의 건물들이 각자의 모습을 뽐내는 풍경은 어디를 둘러봐도 절로 평안해집니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도시를 가면 설레기보다는 항상 긴장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첫 날은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너무나도 편안한 풍경과 편안하게 해 주는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설렘이 다가왔습니다.
성 위로 올라가면 예전 이 도시의 귀족이 자유로이 산책하던 정원도 나타납니다. 혼자 왔으면 몰랐을 공간입니다. 친구 덕분에 천천히 정원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수다를 떨었습니다. 여행을 하며 이토록 많이 말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아름다운 동화 마을, 친한 친구, 그리고 맛있는 맥주까지. 하루가 너무 빨리 가서 아쉬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