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10
프라하에서 마지막 관광은 대망의 프라하 성입니다. 동유럽에 많고 많은 성들이 있지만 프라하 성만큼 웅장하지만 고결해 보이는 성은 없습니다. 구시가지의 높은 첨탑에 올라서면 지붕 위를 날아가는 거대한 새처럼 보이고, 성이 야경의 배경이 될 때는 은은하게 어두운 방 한 칸을 밝혀주는 무드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달라 보이며 관광객들을 손짓하던 성은 다가가는 길도 흥미롭습니다.
프라하 성을 올라가는 다른 길들도 상당하지만, 동쪽 와인 밭을 끼고 올라가는 길은 고즈넉한 프라하의 풍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블타바 강 너머 보이는 넓은 프라하의 구시가지가 천천히 도화지 같은 벽 위로 솓아 오릅니다. 마치 해가 뜨는 양 올라서는 도시의 풍경화는 지평선과 어우러지며 걷는 내내 걸음을 멈추게 해 줍니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들은 목적지만 바라보고 경쟁하듯이 계단을 거칠게 올라가지 않습니다.
계단 끝까지 오르게 되면 드디어 그림이 완성됩니다. 구시가지의 첨탑에 올라서 바라보는 프라하는 장난감 마을을 바라보는 기분이라면, 성에서 바라보는 프라하는 거대한 화폭에 빠져들 듯한 기분입니다. 탁 트인 풍경을 보면 왠지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가슴을 펴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로 이런 세밀한 풍경이 보기 힘들기 때문에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혼자 눈을 가늘게 뜨고 최대한 멀리 보는 놀이도 해봅니다. 이 멋진 풍경을 혼자 바라봐야 한다니 조금은 쓸쓸합니다.
풍경으로부터 눈을 거두고 긴 정원을 따라 외벽을 타고 걷다 보면 드디어 프라하 성 입구가 나옵니다. 프라하 성 자체도 볼거리가 풍성하지만 안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은 독특한 외관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붉은 지붕이 가득한 프라하 성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높고 삐죽이 솓아오른 성당에 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소인국에서 사람들 사이에 동화되지 못하고 외로이 서 있는 걸리버 같습니다.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 첨탑이 저리 하늘로 향해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멍하니 서서 성당을 바라보다 보니, 영화 <캡틴 아메리카>가 생각납니다. 주인공 스티븐 로저스는 70년 전 얼음에 갇혀 냉동되어 있다 우연히 발견되어 21세기의 뉴욕 한 복판에 서게 됩니다. 20세기의 인간인 스티븐 로저스는 화려하고 고독한 뉴욕에 적응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마음속에는 친구와 연인이 있는 20세기를 그리워합니다. 스티븐 로저스가 21세기에 적응한 듯 보여도 마음 한 켠에는 슬픔을 간직한 것처럼, 성당도 이질적인 건물들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에 골계미까지도 느껴집니다. 성당 입구의 광장에서 제자리에 선 채로 한 바퀴 돌며 성 안의 풍경과 성당을 한눈에 담으면 특히 그 외로움이 더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