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여행기 -15
체코의 작은 마을의 첫 한국인 관광객이 되어 마을을 돌아보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친구의 또 다른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누나와 남자 친구 C가 반갑게 인사해줍니다. 일을 마치고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고 합니다. C와 누나는 해가 지기 전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우리를 차에 욱여 집어넣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자고 나라며 어렸을 때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들은 동네 모든 곳을 꿰뚫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꼬불 거리는 산 길을 헤쳐나가기 수십 분, 우리는 어느 산자락에 도착했습니다.
미세먼지 없는 드넓은 평야가 가슴 뻥 뚫리게 나타납니다. 폴란드도 넓은 평야에 있지만 이런 한적한 시골 평야는 처음 만났습니다. 널리 유채꽃으로 가득 찬 들판을 바라만 봐도 좋습니다. D가 트렁크에서 맥주를 꺼냅니다. 운전을 하는 누나를 뺀 우리는 모두 잘린 나무 위에 걸터앉아 맥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영화에서만 나오는 이런 광경과 경험은 이들에게 일상입니다. 이런 사소한 재미를 즐기는 것이 작은 동네를 구경온 재미인 것 같습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다음 장소로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버려진 성이었습니다. 유럽의 버려진 성이라니 너무 운치 있습니다. 버려져 관리인만 있을 뿐 어떤 이도 가지 않아 발길이 끊어진 성입니다. 저 멀리 외로이 있는 저 성도 언젠가는 사람들로 북적이었을 것입니다. 나무 사이로 숨어서 사람들로부터 잊힌 성은 다시 사람을 그리워할지 지금의 고독을 행복하게 즐길지는 상상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성도 언젠가 잊힌다는 게 쓸쓸합니다.
성으로 가는 길이 끊어져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차로 가는 방법은 없어도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 다가가고 싶어 져 걸어 가보는데 가는 길이 단 한 곳입니다. 바로 동굴입니다. 유사시를 대비해 자연 동굴과 함께 이어둔 대비 통로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자연 동굴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 봤습니다. 입구는 성인이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지만 이윽고 정말 높고 넓은 동굴이 나타납니다. 마치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던 탐험대가 된 기분입니다. 두려움보다는 새롭고 신기함만 가득합니다. 동굴을 가다 보니 D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박쥐였습니다. 새끼 박쥐가 동굴에 매달려 자고 있었습니다. 동물원에 사는 박쥐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박쥐를 이런 체코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박쥐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런 멋진 경험을 한 것이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새끼 박쥐는 위생상 만지기 힘들기도 하고, 박쥐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만지지는 못했지만 신기한 마음에 넋을 놓고 바라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