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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un 28. 2019

작은 마을에서 기념한 남북 정상 회담

체코 여행기 - 16

 마을의 첫 한국인으로 동네 투어를 마친 후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습니다.잔잔히 산등성이 사이로 사라지는 밝은 체코의 태양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멋진 노을이 하늘에 펼쳐졌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체코 가정식으로 점심을 충분하게 먹었지만 하루종일 끊임없이 돌아다녔더니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선선한 바람을 타고 돼지고기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사는 듯이 작은 집 주변으로 새파랗게 숲이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같은 풍경 앞에 D의 부모님이 바베큐를 굽고 계십니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환대해주시는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맥주의 나라답게 파티에 맥주가 빠질 수는 없지요. 마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온갖 체코 맥주가 가득합니다. 이윽고 잘 익은 고기가 앞에 펼쳐집니다. 간이 잘 되어있는 부드러운 바베큐는 절로 맥주를 부릅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우리 모두 먹기 바쁩니다.


 그동안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혼자 여행을 해왔지만 이렇게 현지 가족에게 다가가서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오랫만에 본 가족을 대하는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영어를 하지 못하시는 부모님은 저에게 궁금한게 잔뜩 있으신 모양이시지만 체코어로 물어보시느라 옆에서 통역하느라 친구가 진땀을 뺍니다. 특히 아버지는 열렬한 스포츠팬인 탓에 체코어로 끊이지 않고 질문을 하십니다. 미국 아이스하키 팬이신 아버지는 어느 팀 팬이냐고 물어보시지만 하키를 즐겨보지 못하는 탓에 안타깝게도 대답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실망한 눈치의 아버지는 축구는 좋아하냐고 물어보십니다. 다행히 축구는 우리에게도 익숙해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건네 들어야 해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첼시의 레전드 골키퍼이자 체코 국가대표 최고의 스타 체흐를 비롯해 한국 최고의 선수 손흥민 이야기부터 (아직 개최되지 않았던)러시아 월드컵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분이 좋아지신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하와이에서 사왔다는 값 비싼 술을 꺼내 오십니다. 

 술을 꺼내오신 아버지는 우리에게 한 잔씩 나눠 주고 알수 없는 말과 몸짓을 하십니다. 두 손으로 땅을 가르키며 허공에 선을 긋고 다리를 들어 그 선을 건너 갔다 돌아옵니다. 친구에게 눈치를 주니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War is over today."



 아, 오늘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날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판문점 선언이 있던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날이 바로 판문점의 선을 두고 두 정상이 함께 손을 잡고 남과 북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갔던 날입니다. 지금은 다시 남북의 평화의 길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 날은 전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축하해주던 날입니다. 술잔이 부딫치며 청명한 소리를 어둠속으로 날렸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국에서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본다는 말을 뉴스로 봤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사건이지만, 우리가 외국의 정치적인 사건을 듣는다 하더라도 우리와 큰 상관이 없는 일이면 관심을 가지기 힘듭니다. 하지만 체코에서도, 이후 오스트리아를 가서도 우리의 평화는 끊이지 않고 미디어와 사람들을 통해 오르내르고 있었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모두의 숙념은 우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내 나라의 평화를 축하받으니 뭔가 묘한 기분입니다. 술에 취한건지 감동에 취한건지 알수 없지만 더이상 전쟁이 없기를 바란다는 친구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잔을 들어올려 이 축하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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