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손목시계

by 김단이


그가 떠난 이유는 그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 가족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를 만나보지도 않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채였다. 난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언젠간 그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러 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내가 이렇게나 나이가 들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에겐 아직도 그때 일이 눈에 선하다. 엄마, 아빠가 미친 듯이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의 멱살을 잡고 그를 마구 때렸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가 우리 아빠를 주먹으로 쳤고 서로 욕을 내뱉으며 거실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때리는 엄마의 팔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는 울며불며 그의 어머니에게 팔을 붙들린 채로 그를 때리려 했지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언니는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가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언니의 장례가 치러진 후에야. 난 울면서 엄마에게 그와 언니의 관계를 고백했고, 그 길로 우리 부모님은 그의 집으로 다시 달려갔다. 딸이 죽은 이유를 알게 된 부모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언니의 장례가 다 치러진 후라서 그의 죄를 묻기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이미 경찰은 이 일을 언니의 자살로 마무리 지었고,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도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이 일은 겨우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만 주장할 뿐이었다. 한 달이 더 지난 후 그는 소문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는 알고 있을까? 욕조에 기대어 핏물에 잠겨있는 언니의 얼굴은 얼마나 평온했는지. 언니의 긴 머리카락도 빨간 욕조 속 물에 흔들리며 노닥거리는 물고기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언니의 그 모습을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나였다. 난 언니의 모습을 보고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화장실 바닥에도 언니의 피가 흥건했다. 내 엉덩이는 언니의 피로 젖어버렸다. 난 엉금엉금 기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지난밤, 토요일 저녁에 일이 있다며 친척 집에 가신 부모님은 일요일에나 돌아오신다고 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집에서 언니와 난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 이날만큼은 언니가 다시 기운을 차린 듯 전보다 즐거워 보여 나도 기분 좋게 언니랑 밤이 늦도록 이야기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언니의 침대 위엔 이미 언니가 없었다. 난 언니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언니는 그동안 꾸준히 손목에 상처를 냈다고 한다. 그날, 언니의 시계에 불그스름한 무언가를 보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하고 아니겠지, 했다. 난 언니를 믿었다. 하지만 언니는 결국 죽고 말았다. 핏물에 잠겨있는 언니를 화장실에 그대로 두고, 엄마에게 전화한 뒤 난 방으로 뛰어 들어가 서럽게 울었다. 경찰이나 119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엉엉 울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언니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내 잘못이었다. 내가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셨다. 집 안은 온통 비명과 고함으로 가득했다. 10분도 안 되어 낯모르는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뛰어 들어와 언니를 들것에 실어서 병원으로 싣고 갔다. 언니는 잠옷을 입은 채였다. 언니의 잠옷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가 이미 떠난 상태였어도 난 그의 집을 맴돌았다. 항상 몰래 그의 집에 가 보았고 그가 돌아올 기미가 보이는지 혹은 그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조용히 살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를 사랑했고 언니를 사랑했던 만큼 그도 사랑했다. 어느 쪽을 더 사랑했는지 답할 수는 없었다. 그 둘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그 때문에 죽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그가 미웠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그들 때문에 난 괴로웠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집에 가보거나 우체통을 살펴보는 것 그리고 이렇게 그의 가족 곁을 맴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일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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