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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May 02. 2024

그리움만 남긴 채 로이가 떠났다



3월 5일.


 늦은 밤,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에 가려는 찰나였다. 스마트폰 전원을 켜보니 엄마와 동생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 와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할머니 때문일까 아니면 로이 때문일까? 머릿속에 두 얼굴이 스쳤다. 이제야 연락하면 무슨 말들이 쏟아져나오려나 싶어 초조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오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로이가 아프다는 소식이었다. 뒷다리에 갑자기 마비가 와서 급하게 입원하게 되었다고.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한바탕에 엄마와 동생은 지쳐있었고 내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로이가 많이 아픈 것 같다고, 치사율이 다소 높은 병이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단다. 병명은 동맥혈전증, 고양이들이 많이 앓는 심장병이라고 했다. 그간 정기검진을 받아왔을 땐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잘 뛰어놀았던 로이는 하루 사이에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로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12살. 그러나 아직 죽을 만큼의 나이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14살 고양이도 보고, 20살 고양이도 봤는걸…. 몇 년에 한 번씩은 가끔 입원 치료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으니까, 이번에도 또 그렇게 치료하고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올 거야….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났던 걸까. 예전에 로이가 입원했을 땐 이렇게나 눈물이 흐르지 않았었는데. 도대체 이번엔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도 불안하고 슬픈 건지 알 수 없었다.



 3월 6일.


 출퇴근하는 셔틀버스에서도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래도 출근하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로이 생각은 크게 나지 않았다. 오후 4시쯤 동생에게서 퇴근 후 로이를 보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그러자고 답장을 보낸 뒤 남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만 했다. 퇴근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는 이미 낮에 로이에게 다녀왔다고 했다. 엄마는 로이가 누워있는 옆 칸에 로이와 똑같은 병명으로 다른 고양이도 입원해있다고 전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해주었다면서. 굉장히 하얀 털을 가진 예쁜 고양이인데 그 아이도 보니 참 안타까웠다고.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앞에서 만난 동생과 간호사들의 안내를 받아 로이가 입원한 병동으로 향했다.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 로이는 눈은 뜨고 있었지만, 의식은 전혀 없는 듯했다. 로이를 보자마자 다시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유리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며 여러 번 쓰다듬으니 로이는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들었다. 우리를 보는 로이의 동공이 커졌다. 로이는 우리를 보고 일어나 앉으려 했다. 이제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하얗던 코가 새빨개지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코가 불그스름해진다.


 간호사는 아까까지만 해도 로이의 심장박동이 20 아래로 떨어져 있어서 가망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60을 넘기며 조금씩 목소리에 반응하는 걸 보니 그래도 오늘 밤만 잘 넘기면 회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동생과 간호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나는 로이의 옆 칸에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는 하얀색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큰 페르시안 고양이었다. 그 고양이도 한쪽 팔에 링겔을 꽂고 있었다. 로이의 털보다 길고 윤기 나는 흰 털이 아름다웠다. 아이고, 예뻐라….


 15분가량 로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쓰다듬어주었다. 의식이 없던 로이는 이제 우리와 여러 번 눈을 맞추고 자꾸만 일어서려고 했다. 누가 봐도 상태가 호전되어 보였다. 아쉽지만 로이와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여의사가 어디에선가 나타났고, 남자 간호사 1명과 여자 간호사 2명이 장비를 들고 동생과 내가 있는 장소에 뛰어 들어왔다. 그러고선 로이의 옆 칸에서 흰색 페르시안 고양이를 유리문을 열고 꺼냈다. 고양이는 아무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고 여의사는 손가락으로 고양이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놀란 동생과 나는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러자 다른 간호사가 우리에게 오더니 지금 저 아이가 위급상황에 있다면서, 잠시만 나가서 대기하면 곧 다시 불러주겠다고 했다.


 입원실에서 나온 우리는 대기실의 엘리베이터 앞 장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입원실 안에선 계속 소음이 들렸다. 동생과 나는 둘 다 말을 잃은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소음이 잦아들고 입원실의 유리 자동문이 홱- 열렸다. 나와 동생은 똑같이 고개를 돌려 자동문을 바라보았는데, 고양이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던 여의사가 구겨진 표정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지나쳐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와 동생은 또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앉아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여자 두 명이 급하게 입원실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이 둘도 자매 같아 보였다. 아니면 비슷한 또래의 친구거나. 입원실 안은 잠잠했고 2분 정도 뒤에 여자 둘이 다시 입원실 밖으로 나왔다. 한 명은 모자를 푹 눌러써서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입원실 문이 ‘탁!’ 닫히자마자 입을 막고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떤 간호사가 두 여자를 다른 방으로 안내하며 데려갔다. 곧 다른 간호사가 우리를 불렀다. 로이의 면회 시간이 5분 남았다고.


 우리는 다시 창문을 열어 로이를 쓰다듬었다. 로이도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까 그 하얀 고양이 어떻게 됐어요?”

 “방금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로이랑 같은 병명으로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제 로이도 현실적으로 보셔야 해요. 오늘 밤이 고비일 수 있어요.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아깐 심장박동수가 20 아래였거든요. 아이마다 워낙 호전율이 다르고 이 병이 치사율이 높아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아까부터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오늘 밤, 로이의 상태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병원을 나왔다. 동생과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나눌 수 없었다. 오후 9시 반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엄마에게 흰 고양이가 죽었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그렇구나”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로이도 죽을까?”

 “지켜봐야지.”


 엄마와 동생과 나는 셋이서 손을 맞잡고 기도한 후에 겨우겨우 잠들었다. 셋 다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3월 7일.     


 오전 2시가 넘은 시각,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로이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고. 위급해 보이니 얼른 와달라고. 우린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잡았다. 불과 4시간 반 만에 다시 도착한 병원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 의사의 안내를 받아 로이가 누워있는 케이지 앞에 도착해보니, 로이는 쉴 새 없이 발작을 일으키며 날뛰고 있었다. 호흡곤란까지 더해 매우 힘들어 보였다. 의사는 이 상태라면 호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전해주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고. 엄마와 동생, 나는 로이와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요청했다. 입원실 밖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로이는 한쪽 팔에 링겔을 꽂고, 산소호흡기와 심장박동 측정 센서를 부착한 채 우리에게 도착했다. 담요 안의 오른쪽 다리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피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로이는 호흡곤란으로 계속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괴로워했고, 몸은 몸대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사는 로이가 아주 고통스러운 상태일 것이라 설명했다. 보통 외국에선 이런 상황까지 오면 안락사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안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집으로 함께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로이의 호흡곤란과 발작은 4시간가량 계속되었다. 의사는 로이가 금세 떠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로이의 귀에 대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속삭였다. 그런데도 로이는 참,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심장박동이 10초간 ‘0’을 유지하다가도 다시 ‘200’으로 널을 뛰었다. 이게 도대체가 가능한 일인가? 눈물이 범벅된 채로 심장박동 측정 센서의 계기판만 지켜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눈의 초점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다시 동공이 커지고 로이는 우리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 센서가 ‘0’을 가리킬 때마다 드디어 로이가 세상을 떠난 건가 싶어 억장이 무너지면서도 이유 모를 안도감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감정은 그 새벽 내내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었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생명이란 건 참 무거운 것이로구나…. 로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새벽에 울며불며 보내는 4시간은 생각보다 빡셌다. 실은 5시가 되었을 즈음엔 로이가 얼른 몸의 아픔을 버려두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길 바랐다. 로이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눈 한번을 깜빡이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눈을 부릅뜨고 있던 로이는 점점 눈을 감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보는 일을 반복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1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오면서 로이가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파서 울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울어서 그냥 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로이도 자기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 울었던 건지…. 로이도 뚝뚝, 눈물과 침을 계속 흘렸다.


 오전 6시 반이 되어서야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평안히 누워있는 로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린 아직 눈물이 더 남았다는 듯 펑펑 눈물을 쏟았다. 로이는 한 송이 국화꽃과 함께 하얀 종이상자에 담겨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동생과 나는 로이를 장례 하러 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모든 절차를 겨우겨우 견뎌냈다. 물론 계속 울고 있었지만…. 로이에게 장문의 편지를 적어 읽어주고 품속에 고이 넣어주었다. 로이의 팔엔 동생과 내 머리카락을 엮어 빨간 실로 묶어주었다. 다음 생에 꼭 만나자는 의미였다. 몇 번을 해도 아쉬운 작별 인사를 다시 건넨 후 화장하러 가는 길, 장례지도사 선생님에게 두 번은 물었다. 로이가 죽은 것이 맞냐고. 그랬더니 지도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인형처럼 누워있던 로이 그리고 로이의 눈 색을 꼭 빼닮은 스톤


 화장하는 단계에서 로이가 뜨거운 가마 안으로 들어갈 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잠깐 멈춰달라고. 로이가 너무 뜨거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무거운 철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다. 불이 들어왔다는 빨간 버튼을 보고 있자니 몸이 떨렸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고 로이의 백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쓰다듬어보니 백골은 아직 따뜻했다. 얼마 뒤 로이는 곧 자기 털과 눈 색을 꼭 닮은 푸르스름한, 진 초록을 띤 스톤으로 우리 품에 돌아왔다. 스톤을 보자마자 다시 눈물과 미소가 번졌다. 스톤이 너무 아름다웠다. 동생과 거듭 로이와 꼭 닮은 스톤이라고 말하며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다.


 로이가 떠나고 난 뒤 이틀간은 로이가 괴로워하던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자리에서건 눈물이 흘렀다. 늦은 시간, 거실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로이 생각이 났다. 아침과 저녁이면 늘 로이를 안아주었었는데, 그 촉감과 무게가 여전히 고스란히 팔에 느껴졌다. 며칠 간은 집안에서 헛것을 보기도 했다. 발밑으로 계속 로이가 지나다니는 환영이 보였다.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방황하던 20대 철없는 누나를 사람 만들어준 로이. 10년이란 세월도 생각보다 길기도 했지만, 반대로 여전히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 더 오래 살고 가지…. 할머니는 밤에 로이가 보인다고도 했다. 할머니의 침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엄마도 가끔은 로이가 옆에 함께 누워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는 만큼 우리 가족도 슬픔에서 아주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보고 싶긴 하지만,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을 넉넉히 살아내고 있었다. 로이가 떠난 후 우리 가족은 더 애틋해졌다. 로이의 죽음을 함께 이겨냈기 때문이다. 로이는 우리 가족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선물만 주고 떠났다.


 가끔 상상한다. 하늘나라에서 로이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구름 속에서 우다다 뛰어다니며 더 높이, 더 높이 점프하는 모습을. ‘집에 있던 침대보다 편하네’라고 생각하며 구름 속을 뒹굴고 있을 로이의 모습을. 이제 행복만 할 테니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 할머니, 누나들 생각 조금씩 해주기를. 그리고 좀 번거롭더라도 우리가 하늘나라 갈 때가 되면 잊지 말고 네 번은 마중 나와주기를. 아니, 다 아니어도 된다. 이거 하나만 해준다면. 참 가난한 집, 가난한 기억이었어도 그래도 행복했던 묘생이었다고 기억해준다면…. 그렇다면 정말 좋겠다.


네가 있어서 우리 모두가 정말 행복했다, 로이야!

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네!



우리 예쁜 로이 사랑해! :)
로이가 죽기 이틀 전 마지막 영상 :)




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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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만 남긴 채 로이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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