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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Feb 14. 2024

세미 프로포즈


 최근 쓴 글을 보면 설레고 싶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그렇게도 하루가, 1년이 지지부진했나 보다.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올해가 되면서 좀 더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적어도 나에게는. 누군가 나와 평생을 함께 살자고 구체적으로 말을 걸어준 일도 새삼스러웠고, 또 결혼 준비란 게 그래도 살면서 한 번만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뭐 때에 따라선 두 번이나 세 번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한 번 정도만 할 테니까. 네 살 어린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곧 결혼하는데 기분이 어때요?”

 “음… 그냥 내 인생의 작은 이벤트? 오랜만에 흥미로운? 그런 거.”

 “작은 이벤트라기엔 너무 큰 일 아니에요?”


 후배의 물음엔 뭐라고 답변하기 어려웠다. 그지, 엄청 막 그렇게 작은 일은 아니지…. 누군가 나의 대답에 “너무 생각 없이 결혼 준비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 없이 준비하는 일은 아니었다. 많이 고민했고 포기하려고도 해봤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30년간 고이 쌓아온 나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상대방의 인생도 나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면서 이제 그 관계를 벗어나려면 번거로운 일을 겪어내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언제든지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선 나의 초점은 희한하리만치 미래에 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때의 내가 해결할 거야.



 더러는 이게 생각 없는 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어느 날 친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나이가 차서 결혼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오빠랑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하는 거야?”

 “후자지.”

 “그래? 전화할 때 보면 맨날 싸우던데?”

 “다른 사람이랑은 안 싸우겠어?”


  내 질문에 이번엔 동생이 답이 없었다. “으음….” 소리를 내던 동생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건넸다. “그래도 좀 더 안 싸우는 사람이랑 사는 게 좋잖아.” 맞는 말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좀 더 편하긴 하겠지. 이때 희미하게 느꼈던 것 같다. 확신이란 그림자의 단면을.



다른 사람이랑은 이만큼이나 안 싸울 것 같다는 확신이 없어.
누굴 만나도 지지고 볶고 살 텐데.
그렇다면 나는 평생 지금 내 남자친구랑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살고 싶어.



 정말 그랬다.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랑 내가 싸우면서 산다고?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랑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평생 내 남자친구랑 싸우면서 살고 싶었다. 물론, 남자친구가 그렇다고 싸움꾼은 아니었다. 그저 나와는 성향이 많이 다른 사람일 뿐. 그러나 평생 싸워가면서까지 곁에 두고 싶은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닌 증오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설령 먼 훗날 내가 결혼을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한 것을 후회하더라도 이건 ‘현재의 나’에게 지울 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나는 가장 하고 싶은, 나에게 합당한 선택을 한 것. 언젠가 다시 이혼을 꿈꾸게 된다면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나를 믿었다.


 ‘미래의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내 남자친구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위와 같은 고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했고, 그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이었다.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아침에 깨어나면 네가 이 글을 볼지 안 볼지 모르겠다.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어떠한 순간에도 네가 나의 진심을 알았으면 한다.

 나는 어느 것 하나 후회 없고, 너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우리 아주 작은 이벤트 하나 준비해보자.

 사랑한다고 이 말 하나 전하고 싶다.



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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