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이 Jun 20. 2024

사소한 변화가 즐거움을 준다



 어느덧 6월 중순. 화창한 하늘 밑에 잠시라도 서 있으면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계절도 많이 타는 나는 앞으로도 약 4개월 동안은 이 높은 온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집안에선 에어컨을 잘 틀지 않았다. 엄마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더위를 견딜 수 없을 때면 차가운 물로 몇 번이나 몸을 씻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번 이렇게 여름을 보내는 게 지치기만 했는데 신기하게도 올해는 작년만큼 힘들지 않았다. 조금 더 수월했다.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확실히 달라진 점은 있었다. 우선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작년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일이 바빴던 탓에 내 마음을 전혀 살피지 못했고, 도장 깨기처럼 오직 일을 위한 일만 해왔던 게 문제였다. 준비하던 행사나 다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바로 그다음에 놓인 프로젝트만 바라보고 살았다. 모두가 그렇게 일에 치여 산다고는 하지만 특히 작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내 인생 속에 강렬한 한 페이지로 기억될만한, 그야말로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결국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참고 참아 가까스로 감당해온 탓에 작년 12월쯤엔 모두가 인정해줄 만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보람찬 것도 아주 잠시였다. 뿌듯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격이 망가진 것 같았다. 좋은 성적에 만족스럽다기보다 모든 일이 원망스러워졌다. 자주 짜증을 냈고 분노했으며 화를 냈다. 대상이 없는 이 원망과 화를 아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데에만 5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 6월이 되었다.



 이젠 작년에 맡은 그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하늘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주체적으로 시작한 것이 있었다. 올해 여름,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다이어트. 이건 누가 나에게 시킨 일이 아니었다. 결혼 준비를 조금씩 하게 되면서 스스로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꾸준히 요가만 해왔었지만, 헬스를 병행하고 좀처럼 하지 않던 식단도 시작했다. 탄수화물보단 샐러드 위주로 먹으면서 단백질 섭취에 신경을 썼다. 몸무게는 3주 만에 7kg 정도가 줄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나니 걸어 다니기에도 훨씬 수월했다.



 그러다 여름인 만큼 식단 조절하면서도 다이어트용 식품을 다양하게 해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다이어트 식품을 찾아보던 중 콩국수를 만들 수 있는 콩가루와 프로틴면을 주문했다. 이제 집에 있을 때마다 나는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조리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알맞은 비율로 콩가루를 물에 섞어 콩물을 만들고 프로틴면을 끓는 물에 3분 정도 팔팔 삶고 찬물로 식혀준 뒤 섞으면 그만이었다.



 일주일 정도는 그저 담백하고 시원한 맛으로 콩국수를 해 먹었다. 그러다가 점점 무언가를 곁들이기 시작했다. 대단한 반찬을 만든 건 절대 아니었지만, 면을 삶을 때 유부를 함께 삶아서 콩국수에 곁들어 먹기도 했다. 유부 안에 콩국수 물이 잔뜩 배어 유부를 씹을 때마다 콩국수 물이 입안 가득 고였다. 담담하고 담백한 맛이 유부의 씹는 맛과도 더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은 유부가 있는 콩국수에 새우튀김 하나를 올려 먹기도 했다. 새우튀김을 하나 더 올릴까도 고민했지만 그러면 다이어트식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다른 날은 면을 삶을 때 만두를 같이 삶고 콩국수에 올리기도 했다. 유부와 콩국수 또는 만두와 콩국수의 조합은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 느껴지는 시도였다. 더운 여름날, 나에게 소소한 웃음을 전해줄 수 있을 만큼.



유부 / 유부+새우튀김 / 만두를 올린 콩국수 :)



 처음엔 소금을 치지도 않고 콩국수를 먹었지만, 요즘은 허브솔트를 사용해 향을 내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콩국수의 향이 좀 더 다채로워졌다. 그저 집에 있는 식사 시간마다 다이어트 식품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며 한 끼를 해결했을 뿐인데 나의 초여름은 아주 소소하게 재미있어졌다. 콩국수를 준비할 때마다 오늘은 무엇을 곁들일 수 있을까 냉동고를 뒤져보기도 한다.



 콩국수를 만들어 먹다가 알았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매여 살고 있지만 때론 누군가가 시키거나 부탁해서가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다짐해서 행동하는 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구나. 아주 사소한 변화도 나에게 한 줌의 재미를 주는 것이구나. 앞으로의 하루도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시원하게 콩국수를 말아먹었다.



 오늘은 어떤 걸 콩국수에 곁들어 먹어볼까.
오늘은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일을 해볼까.



 이런 생각으로 여름을 지낸다면 이 폭염도 자연스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24.06.19.

_

사소한 변화가 즐거움을 준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못한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