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관광객들과 우리를 토해내고 산자락을 지나 사라졌다. 진혁과 나는 ‘보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대한 다원-’ 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매표소가 있었다. 가만히 매표소 입구를 바라보고 있자 그가 기다리라고 하고선 얼른 표를 끊어왔다. 나는 항상 이렇게 행동이 굼뜬 어린애 같다. 진혁이 주는 표를 받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그동안 진혁이 먼저 내 손을 잡아주던 것처럼, 그의 손을 그러쥐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다. 그랬더니 그의 얼굴에서 엷은 미소가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졌다.
대한 다원으로 들어서기 전, 통나무 같은 굵직한 나무들이 우리의 옆으로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 속을 우리는 천천히 손을 잡고 걸었다. 우리 주위로 은서의 또래가 됨직한 사내아이 둘이서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아이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또 자연스레 은서 생각이 났다. 내 손을 잡은 진혁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그의 얼굴을 흘끔 올려다보니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무를 보고 있지도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 쓴 소년과도 이 숲에서 손을 잡고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철없는 애들이었다. 우와 여기 진짜 좋다! 신이 났던 우리는 이 숲속에서 계속 그렇게 외쳐대고 있었다. 삶과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바보같이 무모하리만큼 서로를 향한 열망에 똘똘 뭉쳐있었다. 건방지게도 우리들의 미래에 관해서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모자를 쓴 그는 환한 얼굴로 내게 소리쳤다.
“우리 결혼하면 여기 또 오자!”
소년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린다.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래, 오고 말았지.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결혼을 하고 내 첫 아이를 잃고 나는 이곳에 오고 말았다…. 그러곤 여기까지 와서 자꾸만 나는 그 소년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통나무 숲길이 끝나자 우리 앞으로 드넓은 쉼터와 수많은 기념품 가게 그리고 그 뒤로 녹차밭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 칸 두 칸 층층이 산처럼 쌓아 올려진 녹차밭의 모습이 보이자 문득 가슴이 두근거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잎 속으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 녹차밭은 하얗고 반짝거리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세상의 어떤 더러운 것을 저 앞에 갖다 놓아도 그 묶은 때들을 다 씻겨줄 것 같은 싱그러움이었다. 진혁 또한 녹차밭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멈춰 서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은 환희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주 잡은 손을 통해 그의 감정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손을 놓았다. 등산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녹차밭은 산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가팔랐다. 물론 오르는 길이 잘 다듬어진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았다. 돌이나 바위를 박아 만들어 울퉁불퉁한 길을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밧줄을 잡고 올랐다. 곳곳에는 고르지 못한 땅에 벤치가 삐딱하게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벤치마다 앉은 사람이 많아 우리는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 위로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그간 해본 적 없는 등산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린 채 그의 뒤를 따르면서 밧줄을 잡고 오르고 있었다. 쉬어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쉴 수 있는 곳도 없었고 도저히 쉴 틈도 없었다. 우리가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옆으로는 한 줄씩 새로운 푸른 잎의 횡렬이 지나가곤 했다. 사라지지 않을 듯 끊임없이 나타나는 횡렬들은 모두 하나의 선처럼 저 멀리 산을 타고 이어져 내려갔다. 저 선은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나려나? 궁금했지만 왠지 그 선들은 끝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았다. 반짝이는 잎의 횡렬을 다시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싱그러워질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저들의 모습처럼 나도 예전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진혁과 내가 갈라서고 나면 예전 서로를 만나기 전처럼 우리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나는 진혁보다 한참 뒤처지고 말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 등 뒤로 땀이 끈적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지는데, 진혁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앞만 바라보고 산을 오를 뿐이었다.
“좀 쉬었다 가자!”
쉰소리로 내가 소리치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마지못해 내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더니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생수병을 꺼내 주었다. 잠시 멈춰 선 우리는 올라오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많은 이들이 밧줄을 잡고 진혁과 내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며 열심히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 곁을 지나쳐 계속해서 위로 오르고 있었다. 진혁은 우리 옆에 자리한 긴 잎의 횡렬을 돌아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200미터만 올라가면 바다전망대야. 거기 앉을 데가 있으니까 거기서 좀 쉬다 가자.”
생수병을 가방 안에 넣은 그는 다시 뒤돌아 사람들을 따라 올라갔다. 보란 듯이 먼저 올라가 버리는 그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나도 곧이어 밧줄을 그러쥐었다.
나도 알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다전망대가 나오는 것을. 그 소년과 나도 바다전망대까지 올랐었다. 우습게도 소년과 나는 무리하게 손을 맞잡은 채였다. 소년은 한 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소년의 중심이 계속 기우뚱거리는 것을 알고도 내 무게가 방해되지 않도록 소년이 잡은 손을 내 힘으로 받치다시피 하여 그의 손을 겨우 잡고 있었다. 소년보다 내가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 또한 소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힘듦도 모두 다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만이 몸속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그렇게 우스운 모양새로 소년과 나는 바다전망대까지 도착하고 난 후 팔다리가 뻐근해 한참 동안 앓는 소리를 냈다. 오른쪽 팔이 저리고 아파서 계속 팔을 주물렀다. 그러나 함께일 수 있다면 어떠한 통증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우리는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하게도 서로의 손을 놓지도 않고 산을 올랐던 것 같다. 그저 함께 산을 올랐다는 생각에 그 시절의 우린 어린 애처럼 행복해했다. 긴 시간을 넘어서도 그 행복은 마치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다시 떠올려보니 그 둘의 사랑은 어리고 웃기기만 하다.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함께 걸음을 걷고 있는데,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던 진혁이 갑자기 그 소년처럼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있는 지점까지 나를 일으켜 올려주었다.
“먼저 올라가. 따라갈게.”
내가 계속 뒤처진다는 것을 알았던 것인지, 갑작스레 앞으로 밀어주는 그 기세에 난 아까보다 더 천천히 산을 올랐다. 등 뒤로 그가 따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의 거친 날숨이 등에 닿는 것 같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등 뒤가 든든해진 것 같다. 뜻밖의 이질감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더 남은 탓에 나는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