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거의 매번 집밥을 먹는다. 정확히 말해서 엄마표 집밥. 우리 집 반찬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나물이 많고 간도 굉장히 슴슴한 편. 그나마 나도 반기는 반찬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호박 부침개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한 달이 넘어가도록 매번 점심과 저녁 똑같이 식탁에 올라오는 호박 부침개는 날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부침개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반찬은 한번 모습을 드러내면 몇 주 또는 한 달이 넘어가기까지 점심과 저녁 내내 물리도록 먹어야 했다. 아, 물론 나는 반찬 투정 따위 하지 않는다. 밥때가 되면 아무리 물려도 그냥 먹는다. 눈앞에 있으니까.
재밌는 것은 반찬의 종류는 바뀌지 않는데, 맛은 할머니의 컨디션과 입맛에 따라서 천차만별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터무니없이 짠 반찬이 올라오기도 하고, 간이 아예 되어 있지 않은 건가 싶은 반찬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지만, 할머니의 변덕에 따라 종잡을 수 없는 맛을 가진 반찬이 식탁에 올라올 때가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은 정말 자극적인 음식이 미치도록 땡길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떡볶이나 마라탕, 매운 봉지 라면 등등…. 그러나 약속이 있어서 혹은 나가서 사 먹지 않는 이상 집 안에 있으면, 한 끼 식사는 무조건 집밥이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이런저런 자극적인 음식을 혼자 사 먹기에도 영 기분이 나질 않았다. 만일 집에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다면 간식이나 야식이 되는 셈인데, 그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야식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밤에 갑자기 라면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먹으면 바로 후회할 것 같아 겨우 참았다.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는 며칠 또 라면 생각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시끄러운 아침을 보내며 일하던 중 엄마가 오랜만에 땡초김밥 두 줄을 사 오셨다. 오전부터 할머니와 입씨름을 한 오늘은 더 이상 지쳐서 밥을 할 기운이 없다고 하면서…. 몇 가지 반찬을 뺀 작은 김밥 한 줄은 다시 얇게 썰어 그릇에 담아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 할머니가 드시는 모습을 본 후에야 엄마와 나는 나란히 식탁에 마주 앉았다. 식탁에 둘이서만 앉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우린 컵라면도 한 개 꺼내어 끓인 물을 부었다. 매운 봉지 라면이 아니어서 아쉽지는 않았다. 곧 컵라면의 면발이 익었는지 확인하고 한 젓가락을 떠서 후루룩 맛을 보았다. 그런데 나는 컵라면의 매운맛보다도 오히려 땡초김밥에 감동했다. 난 내가 엄청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땡초김밥은 아주 맵지도 그렇다고 맵지 않은 맛도 아니었다. 김밥 한 개를 입에 넣고 씹으면 적당히 알싸한 맛이 톡톡 터져 나왔다. 아삭거리는 식감도 괜찮았다. 어떤 김밥은 이벤트처럼 아주 매운 고추를 품고 있어 입안 가득 매운맛이 확 퍼지기도 했다. 만족스러웠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편이었지만 매운 걸 먹은 날은 위가 조금 쓰렸다. 입 주위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건 물론, 자극적인 음식 대부분은 나도 모르게 많은 양을 먹게끔 유도하기도 했다. 먹으면서 양을 조절해보려 해도 쉽지 않았고 계속 숟갈을 놀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먹다 보면 다 먹은 후엔 배가 너무 불러서 헉헉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그러나 알싸한 자극의 땡초김밥은 좀 달랐다. 먹을 때에도 매콤하게 아삭거리는 맛과 식감으로 즐거움을 주더니 속도 적당히 든든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장 원하던 자극점을 만난 느낌. 또다시 저녁에 슴슴한 반찬을 먹는다 해도 용서될 만큼의 평온함을 얻었다. 이 슴슴한 하루가 땡초김밥 하나로 재미가 더해지다니.
“아휴, 맛있었다! 이제야 좀 스트레스가 풀리네!”
엄마가 외쳤다.
23.08.17.
_
슴슴한 하루엔 땡초김밥이 제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