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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Oct 23. 2021

[필리핀] 영어 튜터인 콜센터 디렉터  

튜터로 시작해서 멘토이자 찐친이 된 사연

내가 마닐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면 '가족들이랑 같이 이민을 갔던 건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유학을 간 거라고 하면, 어릴 때 어떻게 필리핀에 갈 생각을 했냐부터 신기하다, 좋았겠다, 독하다, 등등의 반응이 돌아온다.

다이내믹한 학창생활이었다.

가자마자 처음 1년은 비자가 안 나와서 학교에 입학도 못하고, 대학입시에 시달릴 땐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증에 걸리기도 하고, 홈스테이는 열 번 도 넘게 옮기다 보니 이사가 일상이었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영어'였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상태에서 9학년으로 시작하다 보니 욕심 많은 내 성격으로 학교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국어로 했으면 발표도 많이 할 수 있고 친구도 잘 사귈 수 있을 텐데,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반에 속해있는 상태로는 내가 원하는 우등생(?)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포츠를 잘하는 것도, 춤을 잘 추는 것도,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외국 학교에서 인기가 많으려면 어릴 때부터 해온 운동 덕분에 Varsity 팀에 들어가거나, Choir 팀에서 노래를 하거나, 연기나 춤이라도 잘해야 했다.


자신감이 없어서 조용히 학교를 다니다 보니 친구도 많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5년을 살면서 내가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은 나의 첫 튜터(과외 선생님)였다.


첫 만남의 계기는 수학 튜터 면접이었다.

당시 한국 학생들 어머니들이 알음알음 초빙하는 수학 튜터가 있었는데, 시간당 수업료가 불합리하게 비쌌다.

나는 직접 튜터를 구하기 위해서 온라인 사이트에 수학 튜터를 구하는 공고를 냈고, 내가 직접 면접을 봤다.

면접을 보다 보니 한국식 수학 교육 특히 '수학의 정석'으로 이미 단련이 되어 있어서인지(한국 고등학생들은 다 수학의 정석을 푼다길래 엄마한테 부쳐달라고 해서 혼자 공부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내가 면접 보러 온 튜터들보다 더 잘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튜터를 구하려는 이유가 '영어'로 된 수학 문제를 잘 못 풀겠어서였다. 나는 분자, 분모가 영어로 뭔지도 몰랐다. 아 영어가 문제구나! 싶어서 처음 면접을 보러 온 이 튜터에게 수학 말고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튜터 K는 내가 해오는 모든 에세이 숙제에 빨간 줄을 그으며 잘못된 표현을 고쳐주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영어 수업을 했고, 에세이 공책을 3번을 갈아치우는 동안 내 영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아주는 K 덕분에 영어뿐만 아니라 전 과목에서 작문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학교를 마치고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미드를 틀어놔서인지 언젠가부터 귀도 뚫렸다.


내가 11학년이 되면서부터 이 친구가 본업이 너무 바빠지면서 더 이상 수업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수업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내 지랄 맞은 성격도 한몫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K가 수업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늦었길래 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내가 화를 냈다.

K는 많이 당황하면서, 자기가 튜터링 비 받자고 이렇게 궂은 날 MRT타고 우리집까지 와서 수업하겠냐며, 네가 혼자서 가족도 없이 살면서 영어를 배우고자 하니까 기꺼이 너네 집에 오는 거라고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K는 물리적인 이동 거리도 그렇고 체력 소모도 심해서 훨씬 이전부터 튜터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나를 아끼는 마음에 계속 수업을 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수업을 그만두었고, 다른 튜터를 구하기 위해서 스무 명도 넘게 면접을 봤다.

여러 명을 면접을 봐도 마음에 드는 튜터가 없자 나는 거의 기계식으로 인터뷰 질문거리를 준비해놨는데 그중 한 개가 continuously와 continually의 용법 차이였다.

언제 continuously를 써야 하고 언제 continually를 써야 하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 튜터-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게 된 K한테 나 요즘 이렇게 면접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K가 너 참 대단하다면서 그런 면접을 볼 정도면 더 이상 영어 튜터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냐고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K가 정말 '영어'를 잘하는 필리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영어가 공용어이긴 하지만 Tagalog(타갈로그어)라는 현지어가 따로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한 나라여서 집에 돈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영어를 잘한다.

K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인 UP(University of Philippines) 즉 국립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지방 출신이고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는데도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더니 K가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하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K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필리피노 특유의 악센트가 없고 미국식 발음을 구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IT기술이 발달하고 업계 지도가 변화해서 다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잘하는 필리피노들은 외국계 기업의 콜센터로 취업을 했다.

유럽 혹은 미국에 있는 본사와 시차도 나고, 시프트 근무제를 해야 하므로 환경이 좋지는 못하지만, 급여가 일반 필리핀 기업에 비해 훨씬 높아서이다.

K도 콜센터 근무가 본업이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 보니 계속해서 승진을 했다.

나중에는 직접 전화를 받는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콜센터 스태프들을 교육하는 포지션으로 바뀌었다.


K는 아예 트레이닝 디렉터가 되어서 본사에서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서 미국으로 출장도 다녀오곤 했다.

한국에도 올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는 겨울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고 눈을 보고 싶다며 12월에 왔었다.

겨울 경험 기념으로 어그부츠와 목도리를 사줬는데도 너무 추워해서 대부분 집에서 호빵을 먹으며 전기장판 위에 누워있었긴 했지만.


K는 내가 학교에서 친한 친구도 없고 방에서 공부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자기네 가족이 여행을 갈 때 나를 불러주기도 하고 콜센터 직원들과 놀러 갈 때 나를 껴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K의 엄마와 동생들을 모두 만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리핀에서 가본 가라오케도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였다.

우울할 때 종종 갔던 초콜릿 퐁듀 가게도 K 덕분에 알게 되었다.

K는 결혼하고 나서도 나를 집에 종종 불러줬다.

매번 집에 놀러 가서 얻어먹기만 하니, 한 번은 한인 마트에서 냉면을 사서 내가 직접 요리를 해주었는데, 똥손인 나는 냉면이 아닌 온면을 만들어버렸다.

원래는 이게 차갑게 먹는 파스타인데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해명하면서 K의 남편에게 미안해한 사건이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가끔 한국 음식을 보내주면, K는 이렇게 꼭 인증샷을 보내줬다.


이제 나는 K를 한국식으로 unni라고 부르고 K는 나를 dongseng이라고 부른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고, K는 강아지를 데려와서 가족이 세 식구로 불었다.

K는 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기특해한다.

K가 천방지축인 나를 언제까지고 응원해줄거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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