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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Sep 22. 2021

[베트남] 자전거 투어 여행사 사장

허벅지 터지는 해외 여행을 한 사연

패기 넘치던 대학생 시절, 나는 우연히 '투르 드 프랑스'라는 자전거 경기 선수권 대회에 대해 알게 된다. 3주 동안 참가자들이 프랑스와 그 주변국을 자전거로 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고 완전 꽂혀버려서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다. 그렇게 다녀온 첫 자전거 여행에서 나는 진정한 고객 감동이 무엇인지를 V에게 배웠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유학을 해서인지 나는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혼자인 것도 익숙해서 혼자서도 잘 돌아다닌다. 대학생이 된 이후 알바해서 돈을 벌면서부터는 해외여행도 혼자 다녔다.

그런 내가 친구들과 함께 간 첫 여행이 2012년 베트남 여행이다. 이미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기성 여행 상품 말고, 내가 원하는 '자전거 라이딩'을 여행 일정 중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넣으려면 "프라이빗 투어"를 해야 했는데, 프라이빗 투어는 철저히 커스터마이징 된 여행이다 보니 가격이 비싸져서 뿜빠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


모든 것은 내가 준비할 테니 돈만 내고 몸만 오라고 대학 동기 세명을 꼬드겼다. 그들은 비행기, 환전, 숙소 예약 등의 전권을 내게 맡겼다.

나는 그 빡세다는 컨설팅 회사의 인턴을 한 직후라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지만 여행 준비를 도맡아 하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내 입맛대로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신이 나있었다.

열심히 여행 궁리를 하다가, '아시아의 파리'로 불리는 로맨틱한 작은 도시가 베트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 달랏(Dalat)에 베트남의 대통령이 휴가 때 머문다는 5성급 호텔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은 완벽했다.

내가 참여한 컨설팅 프로젝트가 호텔 산업과 관련되어 있어서 온갖 럭셔리 호텔을 하도 많이 본 탓에 눈이 높아져버려서 좋은 숙소에도 꼭 한번 머물고 싶었는데 물가를 고려했을 때 베트남의 5성급이 엄청나게 무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나는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프라이빗 투어를 해줄 자전거 여행사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회사명에 backroads가 들어가는 한 회사가 있길래 도전적(?)인 단어가 마음에 들어 컨택을 하게 된다. 베트남이 영어를 잘 사용하는 국가는 아닌데도, 회사 사장님이 직접 이메일 문의에 응대를 해주는데 영어를 곧잘 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달랏이라는 곳에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은 한국인이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여행을 구체화했다.

그는 매우 세세하게 나의 니즈를 물었다. 그는 우리가 시골길을 달리게 될 것 이라며, 절대로 잘 정돈된 도로를 달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때가 거의 10년 전이다 보니 당시만 해도 한국인 중에 '달랏'에 가는 사람은 정말 없었다. 한국어로 된 블로그 포스팅이나 정보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직항도 없었다. 우리는 호치민 공항으로 IN 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랏까지 가고, 달랏에서 다시 호치민으로 차를 타고 돌아와서 OUT 하는 비행기를 예매해야 했다.


V로부터 [Itineraries for OOO]이라고 정리된 최종 워드 문서를 받았을 때 나는 눈이 반짝반짝했다. 세세하게 일정과 비용을 모두 조율한 결과물이었다. 2박 3일 동안 Saigon에서 출발해서 Phan Thiet과 Nam Cat Tien을 거쳐 Dalat에 도착하는 루틴이었다. (사이공은 호치민의 옛 이름인데, 현지인들은 호치민(Ho Chi Minh City = HCMC) 보다도 사이공이라고 표현을 했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은 여행사 사장 V가 나와 매우 비슷한 모험을 즐기는 성향이었다. 그는 이메일에 "The cycling routes are the quiet backroads and trails, country roads."라고 적었다. 약속대로 그는 충실한 우리의 모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자전거 여행이긴 했지만 2박 3일 동안 자전거만 타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봉고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가 예쁜 길에서만 자전거를 탔다. V가 맨 앞에서 달리고 우리가 뒤따라서 달렸는데, 같이 자전거를 타다가도 힘들면 언제든지 자기 자전거를 싣고 차에 타도 됐다. 어찌 됐건 드라이버는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매일 밤 2시간씩 한강에서 인라인을 타면서 허벅지가 단련된 상태였기 때문에, 거의 풀 코스(280km)로 자전거를 탔다. 우리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동기는 절반 정도는 봉고차에 실려왔다.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V의 섬세함? 욕심? 덕분에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는 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달랏은 내륙 도시였고 직선으로 가면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었지만, V는 해안도로 위주로 루트를 짰고, 중간중간 베트남의 예쁜 관광지도 볼 수 있도록 계획했다.

첫째 날은 캐슈넛 농장과 염전, 용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을 통과했다. 둘째 날은 전통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등대에 들리기 위해서 배도 탔다. 둘째 날 밤에는 국립공원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텔에서 묵었다. 예약할 때만 해도 나이트 사파리를 꿈꿨지만, 현실은 모기와 벌레가 너무 많아서 밤새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자야 했던 밤이었다.


나의 계획은 다른 모든 숙소는 최저가로 묵는 대신, 우리의 작고 귀여운 여행 경비를 5성급 호텔에 올인하는 이었다. 학생이었으니 별다른 도리가 없긴 했지만, 베트남의 저가 숙소는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앞에 모든 숙소의 끔찍함을 잊게 해 줄 만큼 5성급 호텔은 평화로웠고 럭셔리했다. 호텔이라기보다 넓은 마을 같은 공간이었는데, 힘겨운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도착해서 그런지 거의 천국의 느낌이었다.

사실상 셋째 날은 너무 지쳐서 자전거를 많이 타지도 못했고 우리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상태였다. 베트남 쌀국수가 맛있긴 했지만 핼쑥해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자전거 투어가 무사히 끝났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휩싸여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자 호텔 마사지까지 받는 플렉스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조식에 너무 많은 음식이 나와서, 이거 전부 무료로 포함된 것이 맞는지를 재차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


V에게 정말 감사한 이유는, 여행을 즐기게끔 우리를 가이드해준 점이다. 중간중간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었고, 베트남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길가에 있는 과일 장수들로부터 신선한 과일을 사서 나눠주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끼리 갔다면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V는 유쾌한 사람이었고, 여행을 마치고 자기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도 보내주었다. 우리 4명은 그 이후 다시는 같이 여행을 한적은 없지만, 여전히 만나면 그때 그 추억을 이야기한다.

세월이 흘러도 선명한 기억은 재미와 감동이 함께 있었던 시간인 것 같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현재 나에게 남은 유일한 영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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