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선생님이 되다, 첫날의 기록
2017년 5월 1일 본격적으로 교생실습이 시작됐다. 복장은 정장에 평소에 신을 일 없었던 구두를 신고 학교로 출발한다. 8시 30분 교생 선생님이 등교하는 시간이다. 대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출근할 때도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다시금 고등학교로 돌아가면서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됐다. 8시 40분에 시작되는 아침 조회 준비를 위해 담임선생님은 항상 이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하루를 준비해야 한다. 첫 주에는 학급에 들어가거나 조회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아이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첫날에는 함께 교생실습을 하게 된 국어, 영어 선생님과 혁신교육연구부장님, 교생실습 담당 선생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께 간단히 인사를 드리며 시작했다. 그렇게 5월 1일 교생실습이 시작됐다.
1일, 시험 감독을 하다
1교시 자율학습
첫날은 1차 지필고사(중간고사) 부감독, 복도 감독으로 시작했다. 쉬는 날이 많이 있다 보니 아이들과 마주치기보단 교육을 듣거나 이렇게 인력이 필요한 곳에 투입됐다. 시험이기 때문에 1교시~4교시까지 감독을 맡게 됐다. 1교시는 자율학습으로 본관 2층에서 2학년 복도 감독을 맡았다. 특별히 크게 하는 일은 없었고 자율학습이기 때문에 2교시 때 볼 시험을 공부하게끔 만들어주고 복도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감독했다. 1,2, 3학년 중 가장 활발한 2학년이기 때문에 아무리 조용히 시켜도 복도로 떠드는 소리는 조금씩 흘러나온다. 각자 공부하거나 자거나 놀거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1교시를 보낸다.
2교시, 시험 부감독이 되다
1교시가 끝나고 2교시에 교생 선생님 중 처음으로 학급에 들어가 부감독을 맡았다. 3학년 11반 내가 처음으로 학생을 마주하고 들어갔던 교실이다. 2학년 학생 중 일부가 3학년 교실에 앉아있었다. 컨닝 방지를 위해 1학년> 2학년> 3학년> 1학년 이렇게 절반씩 교실을 이동해서 시험을 본다고 한다. 시험 5분 전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감독 선생님이 동봉된 시험지를 들고 와 분단별로 나눠줬다. 부감독은 뒤에서, 감독은 앞에서 아이들을 감독했다. 종이 치기 전 컴퓨터용 사인펜이 있는지 확인하고 인원체크 그리고 열려있는 가방을 닫아줬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책을 보며 공부를 했고, 금방 종이 울렸다. 모든 책은 바닥에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엎드려 자는 아이부터 열심히 푸는 아니, 꾸벅꾸벅 조는 아이 등 다양했다. 자는 아이는 깨워서 OMR카드를 작성했는지 확인해주고 마킹을 잘못한 아이들은 OMR카드를 변경해줬다. 시험시간은 답답할 만큼 굉장히 조용했다. 50분이 지나고 종이 울렸다. 뒤에서부터 OMR카드를 걷었고 빠짐없이 제출했는지 확인 후 시험이 끝났다.
시험이 끝난 후 3학년 11반 아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시험 잘 봤니?"
"그럭저럭 본 거 같아요"
교생실습을 하면서 처음 학생에게 했던 말이었고, 지금도 그 학생과는 꾸준히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3학년은 주로 예체능 계열에 있는 학생과 인문 계열에 있는 학생으로 많이 나눠졌다. 분위 그는 공부부터 시작해서 시험까지 극과 극으로 나눠졌지만 다들 성적에는 꽤나 민감했다.
시험을 보는 그 모습은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경은 변하고 사회는 바뀌고 있는데, 심지어 교육과정부터 교육목표까지 이미 많은 변화를 거쳐왔지만 시험만큼은 기존과 참 비슷했다. 일렬로 아이들이 앉아서 시험지를 받고 종이 치면 뒷사람에게 시험지를 전달하는 모습, OMR카드를 받아 뒤로 전달하는 모습,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정답을 맞혀보는 모습까지 무엇하나 변한 게 없었다. 조금 변한 게 있다면 과거보다 점수에 민감하고 대학교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태도 정도일까?
내가 다닐 때만큼만 해도 시험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성적에 이렇게까지 민감하지 않았던 거 같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꿈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시험 점수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쩌면 학생 한 명 한 명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가 있을 테고 꿈이 있을 텐데 그것보다 시험 점수가 먼저라고 생각하니깐.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편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나름대로 변화하고 생각한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시험 잘 봤니"라는 질문은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좋아하는 일이 뭐야?"로 바뀌었다.
3교시, 4교시 복도 감독을 맡다
2교시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 후 3교시, 4교시 복도 감독으로 들어갔다. 3교시는 신관 2층(신관은 1학년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복도 감독을 맡고, 4교시는 본관 5층 복도 감독을 맡았다. 종종 화장실을 가겠다는 아이들, 시험을 다 풀고 몸이 아픈 아이들은 양호실에 데려다주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시험시간이라 특별히 시끄럽거나 바쁜 건 없었다. 그냥 복도 중간 의자에 앉아서 오늘 할 일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은 대청소 후 하교했다.
점심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르르 빠지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시험 보는 날이라 학교 급식도 운영하지 않았기에 혁신교육연구 부부장님이 점싱을 사주셨다.(참고로 5월 1일부터 26일까지 4주간 63,300원 급식비를 내고 급식을 먹었다.) 쌈밥집에서 꽤 오랜 시간 기다리고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교직에 꿈이 있는지, 어떤 과목을 담당하는지, 몇 학년에 배정이 됐는지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생이 일찍 갔다고 선생님이 일찍 갈 수 있진 않았다.
5교시, 6교시, 7교시
심폐소생술과 교장/교감선생님 연수
5교시 일정은 심폐소생술 교육이 잡혀있었다. 주기적으로 안전교육, 인권교육 등 다양한 교육 연수를 필수로 이수해야하기 때문에 이렇게 학생들이 일찍 가거나 여유가 있을 때 교육일정을 잡고 연수를 받는다. 오늘은 심폐소생술 연수와 함께 교장, 교감선생님 연수가 남은 스케줄이다. 2시부터 진행된 심폐소생술 연수는 외부강사를 초빙해서 진행이 됐다. 학교를 다닐 때 당시 새롭게 올라가던 신관 건물 옥상에 있던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연수를 받다가 중간에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 불려 가 또 다른 연수를 받았다. 학교경영목표, 학교교육목표 등에 대한 이야기와 교장선생님의 과거 이야기 등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됐다. 첫날부터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던 기대감이 있었지만 시험감독을 하자마자 교육을 듣고 끝났기에 담당 선생님, 교과담임 선생님은 따로 만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무난하게 하루가 끝났다.
사회는 변해가고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있는데 학교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아직 수업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험만큼은 그랬던 거 같다. 시험을 보기 전에도, 시험을 보는 도중에도, 그리고 시험을 본 후에도 마치 10년 전을 보는 듯했다. 심지어 시험에 대한 인식 역시 10년 전과 비슷했다. 좋은 대학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시험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시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수능도, 대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은 했으면 했다.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는 것부터 연애를 해보는 것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말이다. 물론 미래를 보면 대학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참 많은 거 같으니깐.
그렇기에 앞으로 선생님이 되고자하는 예비 선생님, 교생 선생님만큼은 모두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변화시켜줬으면 좋겠다. 비록 당장 무언가를 변화할 순 없어도 시간이 흘러 내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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